[♡ 마음 공부 ♡]/법륜스님 법문

[스크랩] 제275회 기도하지 말라는 남편

혜등명 2010. 10. 14. 15:19

제275회 기도하지 말라는 남편

 

 

 

 

 저는 작년 몸 스님 직강을 듣고 가을 불교 대학에 입학 예정이었으나 저의 아저씨가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제가 일 년 동안 내조를 잘 했다고 생각해서 올 봄에 다시 입학을 한다고 하니까 반대도 아닌 찬성도 아닌 그 중간에서 제가 올 봄에 불교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일 년 계획표를 보여 주면서 일 년 동안 제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잘하겠다고 하니까 그 계획표를 보고하는 말씀이 "이런 거는 시간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너는 아직 애도 어리고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애도 보살펴야 되고 아직 거기 갈 여유가 아니다." 하면서 반대를 굉장히 하더라구요.

 

 제가 기도하게 되면 "기도 그것 왜 하니?" 나와서 이렇게 까지 간섭을 하다 보니까 기도하는

마음도 없어질뿐더러 기도를 몰래 하다보니까 기도도 안 되는 것 같고 앞으로 제가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될지 그리고 아저씨의 반대에 대해서 어떻게 극복하여 좀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기도문을 받고 싶어서 스님께 질문 드립니다.

 

 

 

 

 네 이렇게 기도 하세요.

"부처님, 우리 남편은 바른 말만하는 사람입니다. 남편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겠습니다."

 

아저씨가 '기도하지 마라' 이러면 '네, 알았습니다'하고 안 하면 되지.

그런데 이제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 이러면 우리가 복종하라 이렇게 들리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당신 생각이 틀렸어 이러면서 겉으로는 할 수 없이 아저씨 시키는 대로

하면 그건 복종이에요, 복종. 비굴.

복종하고 비굴한 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아저씨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내 고집대로 하면 이거는 교만이라 그래요. 교만한 건 나쁜 거지.

 

그러면 누가 뭐 라든 내 갈 길은 간다, 이렇게 당당하게 사는 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그 다음에 다른 사람한테 나를 안 내세우고 공손하게 겸손하게 사는 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좋은 거지.

그럼 지금 질문하신 분은 남편 시킨 대로 안 하고 제 멋대로 하는 교만 하거나 아니면 시키는 대로 복종하고 비굴하게 살거나 이 둘을 지금 왔다 갔다 한단 말이에요.

비굴하게 살다보니까 반발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내 맘대로 하겠다 고개를 쳐드니까 이건 또 교만해지잖아요, 그죠. 교만해지면 안 된다 그러니까 또 고개를 숙이니까 또 비굴해지잖아요.

 

그러니까 세상이 뭐라고 그러든 누구에게도 구애 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당당하게 살라고 그랬죠. 붓다라는 게 뭐예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가 부처님입니다.

저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굴레 모든 굴레로 부터 벗어났다 이렇게 선언하셨단 말이에요.

그 속에는 남편의 굴레로부터도 벗어났다는 얘기에요.

그런데에 털끝만큼도 구애 받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당당하면 겸손해 집니다.

남편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그러면 겸손하고 당당한 삶을 어떻게 살까 지금부터 연구를 좀 해 보세요.

기도하지 마라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게 겸손한 자세로서 알겠습니다냐, 비굴해서

네, 알겠습니다냐. 남편이 절에 가지 마라하는 데도 절에 오는 것은 당당해서 절에 오는 거냐

말 안 듣고 반항해서 절에 오는 거냐.

절에 오는 건 똑같은데 그게 당당할 수도 있고 교만할 수도 있고.

남편이 하지마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할 때도 비굴할 수도 있고 겸손할 수도 있는데.

절에 가지마라 하니까 안 가는 것만 갖고 말 할 수 없고 절하지마라 한다고 안 하는 것만 갖고 말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그건 똑같다 하더라도 그것이 때로는 비굴할 수도 있고 겸손할 수도 있어요. 상대방이 뭐라고 말하던 내가 하는 것이 당당할 수도 있고 교만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 우리 남편이 하는 말은 다 옳습니다. 남편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 하라는 거는 내 고집, 내 생각을 내려 놔라 이런 얘기요.

비굴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교만을 버려라, 겸손해라 이런 얘기에요.

 

 근데 절에 와서 부처님 법문 들어 보니까 이게 가정을 버리라고 가르쳐요, 가정을 더 화목하게 만들라고 가르쳐요? 내 고집 세우고 내 맘대로 하라고 가르쳐요, 좀 겸손하게 자기를 숙이라고 가르쳐요? 이러면 천당 간다, 저러면 지옥 간다 하는 어리석음을 가르쳐요, 좀 지혜롭게 살라고 가르쳐요?

그럼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 봐도 여기 와서 배워 보니까 이것은 나에게도 그렇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남편에게도 그렇고 이 가르침은 좋은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나는 좋지만 남편에게는

해롭다든지 세상에 해롭다든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누가 뭐래도 해야 되잖아.

그러니까 남편이 가라 그런다 가지 마라 그런다를 기준 삼으면 안 돼.

그러니까 말로 하려고 하지 말고.

절에 다니면서 불교 대학에 다니면서

하루하루 내 삶이 변해가는 걸 보여준다 이 말이에요.

 

그럴 때 아까 기도가 남편이 어떤 말을 하던 '네 알겠습니다 여보,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해 나가면 남편이 볼 때 절에 나가더니 사람이 더 겸손해졌다 이런 걸 느끼겠지.

그럼 절에 가는 것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많은 얘기 하지 말고 그냥 조금만 얘기하고 다니면서 기도를 하세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우리 남편 하는 말은 다 바른 말입니다. 남편 말 따라서 살겠습니다.'

이 말은 내 아집을 내려놓으라는 뜻이에요. 비굴 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래서 남편이 내가 기도하는 데 기도하지마라 그러면'네 알겠습니다' 하고 탁 덮어 놔 놓고

출근한 다음에 기도 하면 되잖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싶으면 조용히 일어나서

저 방에 가서 기도하면 된단 말이에요. 남편은 지금 복달라고 기도하는 줄 안단 말이야.

 

그래서 그게 아니라 내 기도문은 당신이 말하면 껍데기로는 '옳소 옳소' 하고 따르는데

속에서는 '저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스님한테 의논했더니

'남편의 말은 부처님 말과 같다', '남편의 말은 다 옳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내려놓으세요.'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지금 그게 안 되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렇게 못 하지마는 그렇게 하려고 지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그런 지혜가 있어야 된다.

지금 사람은 착한데 지혜 없이 한다 이 말이에요. 내 할 일은 다 해. 남편이 이야기 하는 건 다

들어. 그럼 내 할 일 다 하는 거하고 남편 하는 일하고 상충되지 않느냐, 이제 그게 문제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둘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둘이 같이 갈 수 있는 길.

그게 공부요. 그게 중도란 말이에요.

 

부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왕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신 분이셨죠. 그런데 부처님은 남의 집에 밥 얻어먹으면서 길거리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 까지도 아주 겸손하셨단 말이에요.

 

당당함과 겸손함이 같이 간단 말이에요.

이 좋은 법을 공부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공부하는데

거기에 왜 내가 망설임이 있어야 되냐 이거예요.

밥을 굶고도 해야 되고 목숨을 바치고도 해야지.

 

그 길과 부부가 같이 살면서 남편이 하는 얘기를 '알겠습니다 여보'하고

남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따른 것 또한 겸손 한 자세요.

이게 왜 따로 가느냐, 같이 갈 수 있다. 그걸 지금부터 연구해 봐요. 기도 하면서.

 

그래서 어떻게 기도하냐

'남편의 말은 다 옳습니다. 남편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네, 하고 숙이며 살겠습니다.'

이렇게 자꾸 기도하면 두 가지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출처 : 행복한♡인터넷 열린법회
글쓴이 : 계정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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