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공부 ♡]/법륜스님 법문

천일기도(3넌) 정진을 어떻게 해 가는가.

혜등명 2007. 12. 3. 15:05

 천일기도 정진을 어떻게 해 가는가.

 

 

 

우리가 "인생을 새 출발하자!" 마음을 내서 정진을 해나갈 때

처음 마음을 놓치지 말고 늘 되돌아가자.

그리고 수행정진을 할 때는 항상 갖가지 장애가 나타나는 데

그 장애라는 것이 밖에서부터 오는 것 같은데

사실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경계에 부딪칠 때 지금까지 살아왔던 주관적인 것들이

그 경계에 끄달려서 자꾸 물러나는 마음을 낸다. 그래서 그만 두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수행을 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나타나서 못하게 됐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다.

 

그래서 이러한 장애가 나타날 때는

대결정심 "죽어도 좋다!" 하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밀고 나가야 된다.

그렇게 대결정심을 내버리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냥 할뿐이다."하고는

싶은 날도 하고, 하기 싫은 날도하고, 늦게 잔 날도 일어나서 하고,

빨리 잔 날도 일어나서 하고,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하고 그냥 한다.

 

이런 마음으로 정진을 하면

이렇게 장애가 치성하다가도 고비를 넘기게 되면

장애가 있기는 있어도 많이 약해진다.

 

그러면 정진을 어떻게 해 가느냐?

 

입재를 하고 100일 정도는 꾸준히 밀고나가면서 온갖 장애를 넘기다가보면

'이것이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구나' 해서

자기의 업식을 그래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처럼, 자기 모습을 자기가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한 3년 천일기도 정진을 하면

그 업이 바꿔서 자기 운명이 바뀌게 된다. 팔자가 바뀌게 된다.

사람이 말하거나 생활하는 습관이 바뀌게 된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해나게 된다.

그래서 물러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된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이렇게 나아가게 된다.

 

그러면 수행은 하루 일과 중에는 얼마나 하면 되느냐?

최소 한 시간을 해야 된다. 더하면 좋지만…….

 

언제쯤 하면 좋으냐? 

눈뜨자마자(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이

정신 상태로나, 마음상태로나, 외부 조건으로 봐서 가장 적당하다.

 

어디에서 하는 게 좋으냐? 

조용한 법당에서 하면 좋지만

우리의 여러 생활을 감안할 때 집에서 해도 좋다.

 

여행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여행 할 때는 여행하는 그 상황에 맞춰서 하되

예식을 다 갖추고 할 형편이 못되면 일부는 쫌 간략히 하더라도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하는 게 좋다.

그것은 그 하루를 빠지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니고

"어떤 상황이 오던 끊임없이 한다" 하는 이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게 되면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놓아버려도 되는 것처럼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우리가 정진해가면서 인간관계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살펴보면

우리들의 괴로움이 다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고

내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타인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피하고 싶어 한다.

즉 남편, 형제, 자식, 친구를 안보고 싶어 하고……. 세상을 안보고 싶어 한다.  

이것은 밖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처음에는 바깥을 고치려하다가 내 뜻대로 고쳐지지 않으면 도망가려 한다.

이것은 가출이지 출가가 아니다.

안으로 돌이켜보면 이것은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다.

 

사랑을 못 받아서 괴로운 게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괴롭다.

이해받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괴롭다.

그러기 때문에 이 괴로움은 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타인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보살피고, 도와주려고 마음을 내면

나의 존재가 있어지고, 즉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고, 자유로움이 있다.

그럴 때는 어떤 시간이나 장소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라

어떤 처소, 어떤 시간이든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서 살피면 괴로움이 사라지고

 

바깥을 향해서 탓하기 시작하면

마음속에 억울함이 있고, 분함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짜증이 나고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내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 자신을 위할 뿐만 아니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 보살의 길은 자리이타(나도 이롭고, 타인도 이로운 일) 길이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희생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자리이타 이것이 수행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을 참는 것도 아니고, 억울한 것을 참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내가 옳다'는 내 고집한 것을 발견하고 놓아버리면

참을 것이 없어지는 것이 해탈의 길이다.

 

욕심을 억누르고 성냄을 참고 이렇게 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고

안으로 돌이켜서 놓아버림으로 해서

참을 것이 없는 것이, 지킬 것이 없는 것, 이것이 수행자의 생활이다.

그럴 때만이 자유와 행복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얼마를 노력을 하면

우리가 그런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이 법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 사실은 노력 할 것도 없습니다.

 

법의 본질을 깨치지 못하면 애는 써도 도달 할 수 없고,

법의 본질의 깊은 이해와 그 이해를 수반 한 믿음이 있으면

사실은 애쓸 것이 없다. 노력할 것도 없다.

마치 뜨거운 불덩이를 집었을 때

"앗, 뜨거워!" 하고 그냥 놓아버리듯이~.

 

 (중략)

방하착(그냥 놓아라)!!!

집착이 괴로움의 씨앗(근원)인 줄 알게 되면 그냥 놓게 된다.

그러니 연구를하지 말고 그냥 놓는 연습을 해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그냥 벌떡 일어나는 연습을 해봐라.

오늘 놓쳤으면 내일 아침에는 종이 울리면 '싹~ 일어나야지!'

이렇게 마음에 한 두번만 암시를 주고

따르릉 하면 한 생각 일으키기 전에 그냥 벌떡 일어난다.

벌떡 일어나는 순간에 "일어나야지!" 하는 모든 번뇌는 일순간에 없어져버린다.

 

그런데 우리가 하기 싫다을 따라가게되면 반듯이 과보가 따른다.

그러니 우리의 업식을 따라가게 되면 반듯이 과보가 따르게 되어있다. 

그래서 인연을 지었거드를랑 과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과보를 받아야 된다.

그 과보를 받기 싫으면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한다. 

 

인연을 짓지 않는다 하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냥 놓아버려야 한다.  

 

 

- [새로운 인생의 꽃을 다시 피워라] 중 6편 "흐르는 물처럼 집착함이 없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