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시작해서 2달간 4월, 5월 걸쳐 봄강좌를 진행하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그 가운데서
"화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이 문제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이다.
첫 번째 질문) 저는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삭입니다. 말을 하자니 너무 소
소하고, 안하자니 화가 나요. 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삭혀야 하나요?
두 번째 질문) 분노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나요? 급한 성질을 참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세 번째 질문) 화내고 집착하는 순간에는 이성적인 생각이나 의지가 마비됨을 느낍니다.
뒤이어 후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에 또다시 좌절감이 들어요.
마음이 생각이 요동칠 때 그 순간을 지혜롭게 견딜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이 질문은 조금 무미건조한 편이다.
이런 질문 할 때 제일 좋은 방법은 화나는 구체적인 모습을 질문 하는게 좋습니다.
자기가 고민한 것이 아주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이 묘사될 때
오히려 수행하는 문제는 이야기 하기가 쉽다.
그런데 이 질문 한 사람들은 “그냥 화가나요? 어떻게하면 좋아요?” 이런 질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맞는 구체적인 지침(개인의 수행문)을 주기가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화를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수밖에 없다.
여기 개인분들은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없어요? “왜 화가 났느냐?”->그가 원이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나를 화나게 했다" 이렇게 말을 한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부딪쳤을 때, 관계 맺을 때 화가 제일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화라는 것은 꼭 이럴 때만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다.
혼자 있을 때도 화가 날때가 있다.
지나간 어떤 일을 생각하다가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할 때 화가 난다.
만약에 혼자 화나는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찍어놨다가 이걸 틀어 놓고 본다면
한마디로 “갑자기 미쳤구나!” 이런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을 가지고 우리가 화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한 번 이렇게 분석해보자.
"화에 대한 법문은 자기 자신에게 잘 적용(견주어)해서 들어보세요.
지식으로 듣지 마세요."
마음의 작용에는 2가지 있다.
하나는 화가 일어날 때가 있고, 또 하나는 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다.
항상 화가 일어납니까? 아니죠. 언제나 화가 안 일어납니까? 아니죠.
화가 일어나지 않는 마음이 있고, 화가 일어나 때가 있다.
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는 문제가 안 된다. 좋은 일이다. 이건 문제가 안 된다.
그럼 어떻게하면 화가 일어나지 않느냐?
화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들의 현실이고, 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우리들의 목표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화가 일어나지 않는가.
문제는 화가 일어날 때 우리가 취하는 행동이다. 이 행동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질대로 다 내버리는 것이고(화가 나면 밖으로 다 표출해버릴 때가 제일 쉽다),
또 하나는 화가 일어나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꾹꾹 참는 경우가 있다.
성질대로 화를 낼 때 생각 해보자
그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힘들다. 몸에 열이 위로 올라간다. 상기된다. 제 3자가 볼 때에는 미
친 모습과 같다. 본인 자신도 굉장히 힘드는 것이다. 굉장히 피곤하고 굉장한 에너지가 발산한
다. 소모된다. 이것은 본인에게 피곤한 일이다. 두 번째는 상대에게 벌컥 화를 내면 상대가 더 세
계 맞받아친다. 그러면 화가 더 일어난다. 이 방법은 해결은 안 되고 더 큰 손해가 올 때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좀 영리해서 화를 참는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상대를 위함이 아닌 나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참는다. 이것은 나를 위해서임을 알아야 한다.
화를 참는 길을 선택 할 때
그 누구를 위함아 아닌 나를 위해서다.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참는다. 그러나 화를 참다가 참
다가 못 참으면 나중에 폭발할 위험이 있다. -> 극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살인, 자살). 화를 참다
터지면 화를 내는 것보다 나쁜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참기만 하면 좋은 일인데 참다가 참다가 못참고 터지게 되면 화를 내는 것보다도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첫째 참는 것은 나에게 괴로움이다. 그렇지만 참을 만 하면 되는데 터지
면 더 큰 손실을 가져온다. 또 터지지 안했더라도 참는 게 오래 누적이 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화병은 참아서 생긴 병이다. 상담을 하면 화가 쌓여서 생긴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화를 푸는 치
료방법으로 화를 풀도록 길을 안내해준다. (치료하는데 가면 직접적인 대상이 아닌 상대의 인물
을 그려서 그 앞에서 화난 마음을 다 풀어내는 방식으로 안내를 한다.) 화를 너무 많이 내면 주로
참으라고 가르치고, 화를 참아서 병을 얻으면 푸는 방법으로 지도를 하고 있다.
그러니 화를 내도 문제, 참아도 문젠데 그래도 그 둘 중에 참는 게 나은 편이다.
그러면 손해는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치면 도리어 더 큰 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큰 손실이 오지 않도록 당사자가 아닌 가상의 인물에게 스트레스를 풀도록 안내를 한다.
이것은 화를 내던 참던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 화를 다스리는 3가지 방법
제1의 길 - 쾌락(화내는 것)에 속하고,
제2의 길 - 고행(화를 참는 것)에 속한다.
제1의길, 제 2의 길도 해탈의 길은 아니다. 해탈의 길은 이 두 길을 떠난 제 3의 길이다.
제3의 길- 중도다. 그런데 제 3의 길, 중도의 길에는 구체적인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화가 일어 날 때 화가 일어나는 줄을 알아차린다.(알아차림!)
화가 일어날 때는 내가 잘 모른다. 그 화는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내버린다.
화는 누구나 일어난다. 급한 사람은 즉각 폭발하고, 느긋한 사람은 꾹 참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화가 나면 무섭습니다.
화를 내도 괴롭고, 참아도 괴롭다. 그래서 이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화가 일어날 때 알아차리지를 못한다. 무지의 상태가 된다.
수행은 나에게 괴로움이 없는 것이지 내가 괴롭지만 참는다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인 화에 대한 수행법은
첫째가 “화가 일어날 때 일어나는 줄을 알아차린다!.” 이다.
화가 일어나는 것(무의식, 나도모르게 일어난 상태)하고
화를 내는 것(의지문제, 밖으로 표출)하고 다른 문제다.
화가 일어나는 것은 내 의지문제가 아니다.(나도 모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가 화가 일어남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화를 벌컥 밖으로 내버린다.(폭발)
그래서 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좋다.
그러면 알아차림과 동시에 화가 가라 앉아버린다.(늦게 알아차리면 참는 수 밖에 없다)
알아차림이 없기 때문에 잘 안된다. 그래서 “순간에 깨어 있으라!”(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러면 내 힘으로 끌 수가 있다.
그러나 알아차림에 대한 것은 연습이 계속 되어야 한다.
(초심자에게는 잘 안되 조금 어렵다. 그래서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
그런데 화가 넘 크면 알아차려도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그랬을 때 두 번째 단계가 지켜보기다.
2번째는 화의 상태를 지켜보기이다.
(화를 내는 쪽과 참는 쪽으로 가지 말고. 알아차림과 알아차림의 지속이다)
첫번째는 화가 일어나는 상태를 지켜보기다. 그러려면 알아차림이 계속 이루어줘야 한다.
-> 화가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지켜본다. =>이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사라진다.
알아차리면 화를 내지 않아도 화가 더 커지지는 않고, 일정 시간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 이게 계속 될 때는 화를 참았을 때 지속된다.
그러나 알아차림만 있으면 이게 저절로 사그라진다.
*그래서 참으려 애쓰지 말고, 화가 일어남을 알아차림 -> 지속적으로 알아차림을 지켜본다. ->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다(관법수행 ; 화의 존재를 아주 뚜렷이 바라본다. 비파사나 수행법)
두번째는 화가 났을 때 그 화는 나의 문제다.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내가 화가 났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문제다.
(여러 사람이 잇을 때 그 행동을 보고 어떤 사람은 화가 나고, 어떤 사람은 화가 안 난다.)
화나는 경우 - '내가 옳고 그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 내 판단, 내 기준과 결합했을 때 화가 일
어난다. 내 의견을, 가치관을, 생각을 뭔가를 옳다고 움켜쥐고 있을 때, 고집할 때 일어는 현상이
다. 그러니까 화는 상대로부터 오는게 아니라 나로부터 온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화가 일어나지 않을려면 “내 옳다는 생각을 탁 놓아버려라”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옳음이 객관적인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 다 같이보면
옮음이라는 것은 주관적인거지 객관적이 아니다. 그러면 옳은 것을 어떻게 내려 놓느냐? "옳다라
고 할 것은 본래 없다." 그것은 내 기준에서 뭔가를 움켜쥐고 있으므로서 일어나는 것이다.
'옳다 그르다'는 자기주장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판단기준은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
했을 때 생긴 것이다.
그래서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다. 개개인이 자기식대로 주장하
거나 어떤 집단이 집단적으로 주장 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의 생각이 바뀌
거나 집단이 해체되거나 즉 장소가 옴겨지거나 시간이 흘러가게 되면 이 '옳다'라는 것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옳다 그르다'는 본래는 없다. 그러면 '옳다 그르다'는 어
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이것은 나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내 이익을 중심에 놓고 일어나는 생각이
지 이것은 객관적인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따지면 '아니
다'라는 것을 아는데 사로잡혀 있을 때는 안된다) -> 이것을 내려 놓게 되면 화가 사라진다. 이것
을 움켜쥐면 화가 불같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 화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방법"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시비하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을 버려라." 했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과 똑같은게 뭐겠느냐? 그것은 “상대편 입장에서 이해하기!” 이다.
예) "상대(남편 혹은 아내) 행동 때문에 화가 너무 나서 어쩔줄을 모르겠습니다." 라고 상담을 해오면
거두절미하고 '상대한테 참회 기도하세요'하면 다들 안 받아들여진다.
"참회는 상대가 해야지 왜 내가 왜 참회를 하느냐. 내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대부분 그런다.
그런데 지금 괴로운 사람은 누구냐? 나다.
내 괴로움을 없애려면 내가 참회를 해야 한다.
상대의 행동이 잘했고, 내가 잘못해서 참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당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
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을 해야 한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내
입장에서만 상대가 '나쁜 사람이다'라고 단정한 이게 잘못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 행동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당신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 입장에서 이해 못해 내가 괴로웠습니다.
너무 내 입장만 고집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구나."에 대한 참회다.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참회하기! 그러면 내 화내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러면 이 문제가 풀린다. 세속적인 입장에서는 화가 날때는 상대가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풀린
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참회할 때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참회하는게 아니고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 입장에 서서 보면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그런데 너무 내 입장
만 고집을 해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을 미워한 것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참회를 하면
내 화나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래서
“상대편 마음 이해하기”는 곧 "내가 참회하기"로 직결이 된다.
참회한다는 것은 상대편 입장에서 이해하기 일환이다.
이것이 내 옳다는 것을 내려 놓는 구체적 방법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그 사람은 옳고 나는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상대편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해를 하게 되면
이 화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그 다음에 세번째 방법이 있다.
3번째 방법 ;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 ( 어떤 내막을 따지지 말고 그 행동 사실만 바라봐라.)
그냥 그 사람 행동을 '다만 ~ 그럴 뿐이다'라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에 불만이 있을 때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왜 그런 행위를 하느냐고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그 사람 입장에서 이해를 하면 내 화가 덜 난다. 세상일이라는 것은 내 원하는대로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대서 "첫째 내가 나를 온전하게 보전하는 게 필요하다."
내가 상대를 위해서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는 것은 이런 상대(남편, 아내)를 위해서
내가 희생하는 거고 이런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다.
그런데 상대를 이해하면 상대를 사랑하는 길이 되고,
또한 이런 사람 때문에 괴롭지 않는사람이 된다.
이 사람 때문에 희생을 안해도 되는 길이고,
또 이런 사람마저도 사랑하는 길이 되고 상대를 괴롭히지 않는 길이 된다.
즉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는 길은 나도 괴롭히는 길이고 상대도 괴롭히는 길이다.
그래서 이 둘 다 좋은 길이 부처님이 가르치는 일이다.
그런데 자기가 옳다는 것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둘 다 손해 보는 길을 가고 있다.
심리상담이나 제한된 공간의 수련은 일시적인 처방(치료)이지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다. 그래서 여기에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화가 일어날 때 자기의 화내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지켜본다.
그 알아차림이 지속되도록 한다.
‘화가 일어났구나!’하고 다만 알아차리게 하고 지켜보기만 한다.
두번째, 대상에 대해서도 다만 지켜보게만 한다.
옳으니 그르니 시비분별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인정하기!
그런데 우리는 상대를 있는그대로 지켜보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초심자에게는 자기 마음을 지켜보는게 좋다.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지켜보기기가 좋다.
그런데 이미 화가 나버렸거나 지켜보기가 잘 안될 때는
*상대편 입장에 서서 이해하기, 그러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참회하기.
선종의 가르침에 대해서 공부하다보면 "왜 내가 화가 날까?"를 단정하지 말고
다만 탐구하다보면 제일 쉬운 방법이 '참회하기'이다.
지켜보기, 탐구하기는 초보자에게는 잘 안된다.
그래서 초심자에게는 참회하기가 좋다.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과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에 용서가 잘 안된다.
그래서 과거(스트레스) 거를 청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참회하기가 제일 좋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니까 너무 내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했구나.
그래서 얼마나 상대편이 답답했을까? 뉘우치는 게 진정한 참회다.
화를 벌컥 내고 난 뒤 -> 돌아보니까 자기가 너무 잘못했나 하고 후회하는 문제는
참회와 전혀 다른 것이다.
참회란 - 어리석음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어야 참회가 된다.(알아차림에 대한 참회)
그냥 "잘못했습니다."는 참회가 아니다.
그런데 후회라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에 대한 어리석은 마음,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다.(화도 '내
가 옳다'는 생각 때문) 후회는 잘난 나, 똑똑한 나(가상의 나)를 나로 삼고 현실의 이 못난 나를 보
기 싫어하는 것이다. 또는 '가상의 남편, 아들'을 그려놓고 현실의 남편과 아들이 이거하고 안 맞
아서 미워하고 안 볼려고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것은 잘못하면 우울증로 가거나 자살까지 가기
싶고, 화내는 것은 미움으로 가고 살인하는 쪽으로 가기 싶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알아차림만 있
어야 한다. “저 인간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하는거나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하는거나 똑
같다. (화나 후회의 마음은 똑 같은 심리다. 화는 미움->살인. 후회는 우울->자살로 둘 다 죽이는
일이다.(대상만 다들 뿐~))
그래서 후회는 수행도 아니고 참회도 아니다.
굉장히 나쁜 정신적인 작용이다. 또 다른 자기의 에고인 고집이다.
그래서 "아, 놓쳤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알아차림만 있지
지나가버린 것을 갖고 문제을 삼으면 안 된다. 알아차림만 있으면 된다. 다음에는 “다시
해봐야지”하고 원을 내야지 이미 지나간 것을 갖고 주저앉아서 후회하고 울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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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2:40
질문 4)오랜 시간 10년 이상 친구가 저를 원망하면서 살았답니다. 최근에 그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
습니다. 한 때 친했던 친구로부터 원망과 증오의 글과 말에 당혹스럽습니다. 이유는 제가 거짓말
로 친구와 친구의 새어머니 사이를 갈라놓았답니다. 그 친구 어머니 밑에서 제가 일을 하다보니
그 친구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친구 어머니 입장에서 친구를 바라보니 때로는 어머니를
속 썩이는 친구를 좋지 않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후회스러워 그 친구에게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친구의 원망과 응어리가 풀어질까요?
질문 5) 동업을 하다가 힘든 상황이 되어 끝이 나지 않게 되자 모든 것을 다 주고 빚만 안고 나왔
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상대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왜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둘 다 미움과 원망에 대한 이야기인데 전자의 질문은 상대가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고, 후자
는 내가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다. 이럴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수행에서는 후자
가 더 중심이다.
◆ 내가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심이 있어 괴로울 때
미움이 생긴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내가 옳다'는 것이다. 원망, 원한, 미움이라는 것은
모두 내가 잘했고, 상대가 잘못했다는 대해서 오는 것이다. 그 첫번째 현상은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화를 낼 수 없는 약자의 처지에 놓여지게 되면 결국은 미움과 원망이 된다. 이것은 결
국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주관인데 그저 서로 다들 뿐이다. 서로 입장
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까르마가(업장)이 다르다. 그래서 반응을 달리한다. 그랬을때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이해를 하게 되면 내 괴로움이 없어진다. 그래서 화나
는 것은 여러가지 수행법이 있었는데 이 미움과 원망에는 수행법이 딱 한가지다. "참회하
기!" 이것은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한
내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참회하기다. 그러면 내 가슴 속에 있는 원망과 미움과 한이 다 사라져버
리게 된다.
자, 동업자 입장에서 보자.
동업자란 -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같이 했다. 뭔가 나에게 부족한 부분(재력, 경영능력, 기술...등
등)이 있기에 이익을 얻고자 동업을 한다. 동업을 할 때는 내 이익보기위해 동업했다. 그 사람 또
한 마찬가지다.
자기에게 정직해야한다.(내 이익보기 위함을)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이익 볼려고 했다가 손해보
는 일이 있어요 없어요? 있다. 그러니 이것은 친구와 형제의 문제로 삼지말고 "내가 투자를 잘 못
했구나" 하면 원망할 일이 없다. 이건 그냥 투자에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상대를 계속 미워하게
되면 내 손해다. “이건 투자에 실패한 거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야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가지고 움켜쥐고 있으면 내 손실이다. 그것은 투자 실패로 끝내야 한다. 실
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참회는어떻게 하느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너 잘못했다는 생각만 하고 계속 너를 미
워하고 원망했는데 알고 봤더니 이것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였구나. 아이고 미안하다." 이렇게
참회를 해야 한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달리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빚졌다고 원망하는데 상대는 돈
못 벌었다고 도리여 나를 원망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입장과 처지가 다르다. 그런데 그것을 원
망하고 있다면 나에게 손해다. 좀 영리해야합니다. 손해를 안봐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
서 손해를 너무 많이 본다.
◆ 상대가 나를 원망하고 미워할 때
상대가 나를 원망하는 경우에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의 행동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를 원망할 만하다.'하는 것을 인정하고 알아차리고 끝내야지 후회하지는 말아야 한
다. 그 사람이 10번 원망하면 10번 “미안하다”해야지, "아, 내가 바보같은 짓을 했구나, 내가 잘못
했구나!". 하고 자기 행위를 후회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상대가 원망을 할 때 기거이 받아들어
야 한다. 거기서 끝내야 한다. 후회는 회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아, 원망할만하다" 라고 받아
들어야한다. 이것을 안 받아 들이게 되면 도리어 내가 친구를 미워하게 된다. "나라도 그럴 수 있
었겠다!" 라고 이렇게 알아차리고 끝내야 한다. 후회하면 안된다. 후회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한국사람은 첫 째, 고집도 세고, 둘 째, 후회도 아주 잘 한다. 이 둘은 같은 감정이다. 이 둘을 다
버려야 한다. 그래서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참회다.
내 마음 속에서 미워하고 원망하는게 있으면 참회를 하면 되고,
상대가 나를 미워할 때는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면 됩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아, 그럴 수 있었겠다!"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공부해 나가시면 긴 겨울을 지나고 이젠 화사한 꽃이 피듯이
여러분의 무거운 짐들이 훨씬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여러분은 “스님, 알긴 알겠는데 해보니 안되던데요” 할 것입니다.
몰라서 못한 것은 어리석은 범부 중생이고.
아는데 할려고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은 "지금 수행 중이다." 될 때까지 한다.
한두 번 해보고 안 된다는 것은 인과의 법칙에 어긋나는 거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습관이 들어 있는데
그것이 어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겠느냐.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한다.
이것은 용맹정진이다, 불퇴전의 정진이다. 물러남이 없는 정진이다.
안된다고 포기 하는 것이 아니라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되어진다.
마치 자전거를 처음 타는 사람이 자꾸 넘어지다, 넘어지다 타지는 것처럼
우리가 자꾸 놓치고 다시하고, 놓치고 다시 하는 것은
안 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되어가고 있는 쪽으로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꾸준히 해나가기만 하면 누구나 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 2007년 봄강좌 [행복한 이야기] 제 2강 "화, 원망하는 마음" 중에서 녹취한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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