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4차 천일기도 입재 법문 (2002년)
그러면서 변화하지 않는 현실을 답답하게 여기고 한꺼번에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하면서도 재벌이 후원해 줘서 병원도 짓고, 불교 학교도 짓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 또한 스님들의 모습이나 지난 역사의 불교를 보면서 분노와 흥분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가 보기도 싫었고, 살기도 싫었고, 불교도 싫었습니다. 이 땅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미국에 갔지만, 미국도 싫었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안 하고 살았어요. 그야말로 이 세상과 불교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 찼던 때였지요.
뉴욕에 머물다가 로스엔젤레스의 반야사라는 절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2층짜리 건물에서 반지하층이 법당이었어요. 그런데 주지 스님은 어디 가시고 노스님이 한 분 계셨지요 그분께서는 당신도 객인데 당신이 하루 먼저 왔으니 주인 노릇을 하겠다고 하시며 저녁 먹었냐고 물었어요. 안 먹었다고 하니까 “내 전공이 비빔밥이야.” 하시면서 비빔밥을 만들어 주셨어요. 밥을 먹고 잠자리를 보는데 방이 하나 있고, 거기에 침대가 딱 하나 있었어요. 당연히 “스님께서 주무셔야지요.” 하니까, “아니야, 나는 침대에 자면 허리가 아파 안 돼, 내가 밑에 잘게.” 하시면서 한사코 침대에 주무시지 않으셨지요. 그렇게 위에 자니, 밑에 자니 한참 실랑이하다가 허리가 아파 못 주무신다 하셔서 할 수 없이 제가 위에 자고 노스님이 밑에 주무시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마련하고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제가 세상에 대
해 분이 덜 풀린 상태여서 마치 노스님이 불교의 역사를 그렇게 만든 사람인 양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불교가 이래서야 되겠느냐?’ 이런 내용으로 두 시간 동안 화풀이를 한 셈이었습니다.
“……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괜히 선문답 식으로 손가락이나 올리지 말고 말씀으로 확실히 해주세요.”
그러자 스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더니,
“여보게”
“예”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에 딱 앉아 가지고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곳이 절이고, 이것(‘그것’이 맞지 않나요?)이 불교라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저는 두 시간이나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병원도 문제고, 학교도 문제고, 청소년 포교도 문제고, 행정 체계도 문제고, 사회 민주화에 동참하는 것도 문제라고 열변을 토했는데, 게다가 뜬구름 잡는 말씀 아예 하지 마시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 논두렁 밑에 앉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이 사람이 중이고, 이곳이 절이고, 이것이 불교다.’ 그 한 말씀만 하셨던 것이지요.
저는 머리에 폭탄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꿈속에서 살아왔던 겁니다. 불교 아닌 것을 불교라고 생각하고, 그걸 개선한다고 싸웠던 것이지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불교학생회에 들어가서 활동하였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절에 들어가 내 인생을 온통 바쳐서 청소년 포교를 하고 불교 중흥을 한다고 뛰어다녔는데 마치 밤새도록 꿈속에서 도둑놈한테 쫓겨 도망 다니다가 눈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닌 상황과 같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저를 깨우쳐 주신 분이 바로 서암 큰스님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남을 비판하고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을 넘어서서 우리가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현실을 살펴봅시다. 그나마 복 비는 불교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종교로 갔을까요? 치맛바람을 얘기하며 비판하지만 치마불교가 아니었다면 어찌 500년 간 조선의 억불 정책 아래에서 오늘까지 불교의 명맥을 이어왔겠습니까? 우리는 지나온 역사의 현실과 오늘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고맙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바른 법에 귀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정법에 귀의하는 것, 이것이 ‘바른 불교’입니다. 부처님의 정법은 출가하고, 참선하는 스님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바른 법, 일체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참으로 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고통과 속박이 남편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아내로부터, 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나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이 밖이 아니라 나에게서 일어난다고 할 때, 나는 이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됩니다. 문제의 원인이 밖에서 온다면, 나는 늘 그 경계에 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수행의 입장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더 이상 나 밖의 어떤 존재에게 매달리고 의지하다가 결국은 후회하고 탓하는 불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관점을 정확하게 가져야 합니다. 각자가 수행정진해서 자기 인생의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바른 법, 정법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뭘 안 먹어야 한다든지, 안 입어야 한다든지, 허리를 땅에 붙이면 안 된다든지 하는 게 아닙니다. 외형으로 정법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에 부딪혀서 일어나는 마음을 여실히 살피면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 하듯이 즉시 본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쉬운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생활 속에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자식 사이에, 동료 사이에, 매일 우리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속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말합니다.
정토행자들은 적어도 하루 한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만사를 제쳐 놓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를 정화하는 기도를 통해 참으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24시간, 늘 자기 문제에 매달리는데 이렇게 한 시간 정도만 자기에게 투자하여 스스로 기쁘고 만족하면, 자신에게 할 일이 없어집니다. 나머지는 세상과 이웃을 위해서, 가까이 있는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부모를 위해서 쓰도록 합니다. 내가 가진 재물은 유용하게 쓰고, 내가 가진 정신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세상의 필요에 따라 쓰는 보시와 봉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고 남에게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매일 아침 일어나 부처님께 한 시간 귀의하고, 정진하고, 하루에 최소한 천 원, 1달러를 보시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하루에 적어도 한 가지,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삽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다 내놓는 게 아니라 삶 중의 아주 일부분 즉, 24시간 중에 한 시간을 재고, 많은 돈 중에 천 원을 보시하고, 수많은 일거리 중 한 가지를 하는 것입니다. 이 작은 것들이 모이면 얼마나 큰 것이 되겠습니까?
오늘 정토회가 불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작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단체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보시한 돈, 여러분들이 매일 그렇게 봉사한 일, 여러분들이 집에서 그렇게 매일 정진한 힘의 결과입니다. 이런 하루하루의 정진이 모여 만 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정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한 동마다 하나씩, 최소한 한 면마다 하나씩 있을 거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 다른 종교, 다른 단체도 본받아서 자꾸 생겨나겠지요. 동네마다, 면마다 하나씩 있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청정한 사회가 되겠습니까?
오늘 참석한 여러분들은 앞으로 10년 계획 잡고 수행 정진하셔서 자기 집을 법당으로 만들고, 자신은 법사가 됩시다. 여기 참석하신 500명이 함께 한다면 10년 뒤, 500개는 이미 되는 겁니다. 법당이라고 기와집으로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큰스님 말씀이 논두렁 밑에 한 사람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가 중이고 그가 있는 곳이 절이고 그것이 불교라 하셨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법의 진수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나갑시다.
이제는 더 이상 스님, 법사, 실무자 이런 말을 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정토행자로서 이 운동의 주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법당 운영을 하고, 우리가 통일 운동을 하고, 환경 운동도 합니다. 누가 하는데 그저 후원이나 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합니다. 우리가 주체입니다. 이것이 제4차 천일결사운동의 제일 중요한 방향이 됩니다.
그리고 한국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정토행자 운동을 추진할 근거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해외 교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 4차년도의 계획입니다. 오늘 출발해서 삼 년 동안 부지런히 달려나가 마침내 우리가 세운 원들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