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수행은 이렇게~
일상에서의 수행
법륜스님/정토회 지도법사
사람들은 수행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수행을 하는 시간은 언제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마음을 살펴보면 자고 일어났을 때는 신경이 안정되어서 고요한 편입니다. 사람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흥분을 하고 그러면서 경계에 흔들리고, 그렇게 지내다 저녁이 되면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범죄나 사건이 발행한 건수를 조사해 보면 평균적으로 아침에 일어난 것보다는 오후에 일어난 것이 훨씬 많고 또 초저녁이나 밤에 일어난 것이 많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멱살잡고 싸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는 동안에 신경이 안정되어서 마음이 고요해져 있거든요.
수행이라고 할 때 엎드려서 절을 하거나, 밥을 굶거나, 참선을 하는 것만 가지고 '수행'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에 내재해 있는 원리를 살펴서 그 원리에 따라 자기가 행하고자 하는 바를 행해 나가는 것이지요. 인생살이를 하면서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기초로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하면 귀 기울여 가만히 들으며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혹시 오류가 없을까 점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대해서도 평가해 낼 수 있는 자세가 다 수행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간에 자기를 돌이켜 볼 때 좀더 깊이 돌아져 봐질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새벽시간이 비교적 좋습니다. 특별히 수행을 하지 않아도 잠을 잤기 때문에 신경이 가라앉은 시간이지요.
그러면 아침 몇 시쯤이 좋을까요? 선방에 사는 스님들은 새벽 3시부터 일어나서 정진합니다. 자정이 넘어가서 새로운 날이 시작될 때 기운을 받기에 좋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저녁 9시에는 자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생활은 11시나 12시 넘어서 잠을 자기 때문에 3시에 일어나려면 수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럴 형편이 못 되면 10시에 자고 4시에는 일어나면 좋습니다. 그것도 형편이 안 되면 늦어도 11시에는 자고 5시 전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잠이 좀 적은 사람은 12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면 되겠죠. 대부분 절에 사는 대중들은 4시에 기상해서 4시 반에 기도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전체적으로 5시부터 수행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 6시에 하게 되면 아이들이 7시에 학교 가는 것을 대비해서 6시에는 공양을 짓는다든지 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시간에 자꾸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보통 시민들의 기상시간을 6시로 보기 때문에 우리들의 정진 시간은 5시부터 6시까지 하기로 한 겁니다. 1시간 일찍 일어나면 외부로부터 아무런 방해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시간에는 전화가 오든지 사람이 찾아오든지 무슨 일이 생기든지 해서 정해진 시간에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생할 습관을 봤을 때 평균적으로 5시가 가장 무리가 없다고 판단해서 5시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개인 사정으로 어쩔 수 없다면 4시반부터 5시반까지 해도 되고, 4시부터 5시까지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당겼다가 늦추었다가, 아침에 했다가 저녁에 했다가 이렇게 하는 것은 중도 포기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안 됩니다. 정해진 것은 변함없이 비가 오든 날이 맑든 손님이 찾아오든 혼자 있든 여행 중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그 시간이 되면 일어나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할까 말까,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런 번뇌가 전혀 안 일어나게 됩니다.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게 가장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하는게 좋은가? 우리는 수행하려면 부처님이 계시는 절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겠다는 뜻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정진하겠다는 뜻입니다.
수행을 할 때 장소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러나 초심자가 수행을 할 때 너무 소란한 데서 할 때는 집중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초심자에게 정진할 때는 조용한 숲이나 나무 아래 또는 빈방에 앉아서 자세를 꼿꼿이 하고 의식을 코 끝에 딱 모아서 숨이 나가고 숨이 들어오는 것이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이럴 대 조용한 숲이나 나무 아래, 빈 집, 빈 방이란 건 조용한 곳에서 하라는 거지요. 그래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기 집 빈 방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어느 쪽을 보고 해야 합니까?" 이렇게 묻는 분도 있는데 '내가 있음으로 해서 동서남북이 있고 내가 없으면 동서남북도 없다.' 이런 얘기를 자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느 쪽이라고 본래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요즘은 아파트 문화다보니까 도무지 동서남북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 어느 쪽이든 방향은 상관이 없습니다. 절을 하든 명상을 하든, 마음이 편한 쪽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동서남북의 방향은 아니지만 마음이 그래도 좀 편안할 수 있는 쪽은 바로 문이 없는 벽 쪽이겠지요. 그러니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마음을 어떻게 돌이키느냐 이게 핵심이지 때와 장소는 핵심이 아닙니다.
앞에 부처님을 모셔야 하는냐?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것은 좀 허전하다 하면 부처님 사진을 앞에 모셔놓고 하면 좋겠지요. 향도 피우고 촛불도 켜야 할까요? 요즘 촛불 잘못 켰다가 불내기 쉬워요. 그것으 다 정성이에요. 그냥 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공부를 하면 되고 시간과 장소가 바뀌게 되면 바뀌는 대로 또 어디서든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애쓰고 결심하는 게 공부가 아니고 자기 마음에 불편이 있을 때 '내가 경계에 흔들리는구나' 이렇게 돌이켜 알아차리고 놓아버리는 것을 중심으로 해야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달음의 길로 가능 공부법입니다.
왜 수행을 합니까? 수행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해탈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속박 받지 않는 마음, 자유로운 마음을 말합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번뇌가 없는 거예요. 누구를 미워하거나 혼자서 괴로워하거나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방황하거나 초조하거나 불행하거나 슬퍼하거나 이런 것이 다 한 마디로 '고', 괴로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이 마음에 없는 상태, 이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완전한 자유 또는 참 행복, 참 자유를 성취하는것입니다.
-정토지 2005년 8월호 [일상에서의 수행] 법륜스님/본지 발행인-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