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공부 ♡]/법륜스님 법문

[스크랩] 윤회에 대하여(정토TV즉문즉설105편)

혜등명 2011. 12. 5. 12:58

 

                                 

                스님 항상 저희들을 깨어있도록 좋은 법문을 들려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윤회의 주체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전생에 지은 대로 지금 이곳에 이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잘못된 생각인지요? 스님의  명쾌하신

   설법을 부탁드립니다.                                      

 

            여기 전생이라는 거를 지금의 이전이라고만 해석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우리가 풀이 한포기 나고

   죽고, 나고 죽는건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죠? 열번 났느냐? 스무번 나고 죽었느냐 이게 중요합니까? 열번 나고 

   스무번 나고 죽고 해도 그 안에 들어있는 유전인자의 변화가 없는 한은 어때요? 결국은 똑같은 것이 반복이 됩니다.  

   땅이  좀 좋은데 가면 어떻게 될까요?  키가 좀 더 크거나 꽃이 좀 더 크거나  이럴수 있고 열매가 좀 많이 달릴

   수가 있고  땅이 좀 박한데 가면 키가 제대로 못 큰다던가  요런 차이는 있지만  종자가 바뀌는 거는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다보니까 좋은 나라에 태어났다던지  즉 , 지금 부터 50년 전에 태어났던 사람들은

   다 전생에 죄가 많아 이 땅에 태어났겠어요?  지금 태어난 사람들은  다 전생에 복이 많아 이 땅에 태어났

   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 씨앗은 비슷해요. 떨어진 환경이 50년 전 보다  지금이 조금 더 좋다면 여러분

   들의 삶이 조금 더 나을 뿐 .. 그렇다고  여러분들의  기본 업식이  바뀐 건 아니예요.  우리는  이것만 갖고도 잘되고

   못되고를 논할 수는 있죠.

 

          그러나 , 해탈이라는 것은 어떤데 떨어지던지  도무지 구애 받지 않는게 해탈이예요. 여러분들이 바로 좋은

   데  떨어지면 좋고 나쁜데 떨어지면 싫고 하는 이 마음이 뭐다?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이예요.

   좋고 싫고가 있는 한은 윤회를 하게 되는 거예요. 좋고 싫고가 있는 한  지옥과  천상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좋고 싫고를 떠나버리면  어떠냐?  지옥과  천상에서  사라져버려요,  도무지  어떤게 지옥이고  어떤게 천상

   인지 없어져 버려요.  좋고 싫고가 있으면 인도의 둥게스리 마을은 나쁜 마을이고 여기 한국은 좋은 마을이 되겠죠.

 

         그러나 수행하는  입장에서  좋고 싫고를 떠나버리면  인도의 둥게스리 마을은 우리가 보살행을 할 수 있는

   좋은 터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는 그곳에 가서 봉사를 하고 수행을 하지 않습니까 ? 그렇지 않으면

   거기 뭐하로 갑니까? 지장보살은 좋고 싫고를 떠나 버렸으니까 어디로 갑니까?  지옥에 가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고 관세음 보살은 사바세계에 와서 중생을 구하지 않습니까? 좋고 싫고가 있으면 뭐하러 여기에 옵니까?

   천상으로 가거나 극락으로 가지.  좋고 싫고를  논하는 것은 경계를 논하는거요. 좋고 싫고를 떠나버리는건 좋고 싫고가

   다 내 마음에 있는거다 이거를 깨달아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나 다 그것 때문에

   좋은 거예요.

 

          차가 없으면 걸어갈 수가 있어 좋은 일이고  차가 있으면 빨리 갈 수 있어 좋은 일이고  돈이 있으면 보시 할

  수있어 좋은 일이고  돈이 없으면  정진 하기에 좋은 형편이고  지위가 높으면  교화하기에 좋은 일이고 지위가 낮으면

  인용하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  도무지 어떤 형편이 든 그것은 나에게 늘~ 다 좋은 일이예요. 옛날에 유명한 의사

   에 대해서 그런 얘기가 있죠?  스승이 제자에게 "밖에 가서 약초를 캐오너라 ." 이랬어, 아마 원래 얘기는

   약초 아닌 것을 찾아오라 했나봐요. 하루 종일 있다가 빈 손으로 왔어요.  "왜 빈 손으로 왔느냐?" "약초 아닌 것은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그랬어요   그게 바로 명의야.  이 세상에는 약초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 다 약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그대로 쓸만한 거예요.

 

           다 돌이켜 보면 좋은 일이예요. 그렇게 되어야 이 윤회로 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윤회라는 것은 나고 죽는다는

   것은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해요.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 번뇌로 부터 벗어

   날 수 가 있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이 좋고 싫고를 논하는 한은 이 윤회로 부터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  그럼 오늘

   우리들의 마음은 늘 자기의 까르마 , 자기의 업 , 좀 더 쉽게 말하면 자기의 습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 습

   관을 기준으로 해서 늘 바깥 세계에 대해 좋고 싫고를 구분짓고  좋은 것에 집착하고 나쁜 것에 혐오감을 일으키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윤회 전생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사물을 보고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이것은 현재 이전의 과거의 나에게 지금까지

   오면서 지워진 나의 업이 반응을 하는거요. 그러니까  현재의 나는 과거의 결과물이요.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현생은  전생의 결과물이다 . 이렇게 말 할 수 가 있어요, 또한 앞으로의 일은 어떠냐? 내가 비록 이렇게 지어져

   왔다 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해서 꼭두각시 처럼  이 업에 끌려 다니는 인생이라는 걸  지금은  내가 알고 이런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반응을 안 할 수가 있어., 이러한  마음이 일어 나는 것 까지는 과거의 결과물이지만

   그것에 대해서 내가 반응을 안하는 것은 행동을 안하는 것은 내가 얼마든지 지금 가능한 일이죠.

   

          그렇게 되면 벌써 운명이 바뀌는 거요.  당연한 고리로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여기서 내가 딱~! 멈추니까 그래서 미래는 " 수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말 할수 있지만  수행자에게는 어떤 운명도  정해진 것이 없어 "  그런데서 윤회고 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

   이 말이야 . 그런데  이 윤회의 행위, 윤회의 행위 중에 불변하는 주체가 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움직

   이는데 자동차가 빵빵 소리를 내는데 불변하는 주체가 있습니까? 그런 인연들이 모여서 그런 작용이 있을 뿐이지.

   어떤 것이 불변하는 주체인가 해서 그 부속을 하나 하나 떼어내보셔요. 모든 부속을 다 뽑아내어서 남는 것이 하나

   도 없어 . 오늘 우리들은 이런 작용이 있지 작용의 주체가 있는건 아니라는거예요. 작용의 주체가 있다는 건 무얼

   말합니까?  운명을 못바꾸는거란 말입니다.  그건 못 바꾼다는 이런 얘기 아니예요.

 

           그러기 때문에 주체가 없다는 얘기는 어떤 것이든지 다 바뀌는 거요. 그래서 우리 불법을 해탈지도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럿다. 그런데  불법을 믿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럼 불법을 믿으면  사형선고를 안받고 감옥에서 나오는 게 운명을 바꾼거냐

   이렇게 생각하는거는 이거는 100년도 못 살 육신을 기준으로 해서 해탈지도를 논하는 사람들이야 . 이거는 세속적인

   관점이야. 이 사물의 본질 , 존재의 본질을 깨쳐버리면 죽고사는 두려움이 없어져버려 .

        

           내가 과거에 지어온 인연의 과보 ~! 내가 얼나마 어리석어 이런 인연을 지어서 여기까지 왔느냐를

   확연히 깨쳐버리면 이런 과보를 아주 기꺼이 받는거야 . 도무지 이게 벌이다 이런 생각도 없어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져 버려. 세상사람들이 여러분들이 볼때  아이고 저래도 저건 죽는군  불교를 믿어봐야 죽고마네.

   이런 기준은 그걸 보는 사람의 눈이 중생의 잣대를 가지고 보는거다 이말이야. 아이고 저 사람은 불교를 믿는데도

   암에 걸리네 이래 . 물론 수행을 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적어지고 설령 암에 걸리더라도 나을 확률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요. 왜? 그것이 다 어떤 세포의 돌연변이에서 생성되는 건데 그것이 어떤 먹는 음식하고도 관계가 있지

   만 그러나 그것은 심리적인 어떤 맺힘 , 충격하고 굉장히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기 떄문에 정진을 해서 이런 것

   풀어 버리게 되면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 수행의 목적이 그 병 낫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예요 그거는

   부산물에 불과한 거예요. 설령 죽을 사람이 나았다 하더라도 그걸 갖고 기뻐한다면 이 100년도 못 살 육신갖고

   기뻐하고 이런거 아니예요.

 

           불법을 그렇게 보면 여러분들은 복을 구하는 세속적인 수준을 못벗어난다.  당연히 수행을 하면 가정이 화목해

   지지요. 수행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좋아지죠. 왜? 집안이 화목하고 엄마가 경계에 끄달라지 않고  초연하면

   당연히 아이들도 옆에 있다 물이 들지요, 그리고 부모가 아까 여기 질문처럼 서로 싸우고 하면 아이들도 거기에

   나쁜 물이 들어서 고통이 생기죠. 정진을 하게 되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개인이 건강해지고 하는 일도 잘되고 그거

   맞는 얘기 예요. 그러나 하는 일이 잘되는게 목적이 아니예요. 목적은 내가 나고 죽고 잘되고 못되고 도무지 이런것에

   구애 받지 않는 경지로 가는게 목적이예요. 나머지는 부산물이예요. 이 워낙 가르침이 위대하다 보니 부산물이

   다른 종교의 목적보다 더 좋은거죠. 부산물만 해도 그 찌꺼기만 해도 엄청난 복이죠,

 

           그러나 불법은 그게 목적이 아니예요  여러분들 눈으로 보면 법륜스님 몇 살까지 사나 해논 일이 사회에서

   얼마나 인정 받느냐 이런 걸 갖고 평가 하겠죠. 그건 세상의 눈이예요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인생은  내가

   내일 죽던 모레 죽던 일이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거기에 덜 구애 받는 인생을 가는게 그것만이 나의 재산이

   예요. 그외에는  부산물이예요. 그렇게 공부를 해나가셔야 여러분들에게 부산물이 커지는거예요  아시겠어요?

   아무리 그게 커도 부산물이지 주 목적은 아니예요.그것이 허공계를 가득 채울 만큼 크다해도 그것은 유루법이다 이말

   이예요. 우리 불법은 무루법  자기 해탈을 구하는거예요 .그런데서 질문하신 분 너무 이렇게 모양에 집착해서 

   윤회를 이해하거든요,

 

            애가 하나 태어나서 죽었다  요건 전생이고  개구리가 죽어 새가 되면 요건 전생이고 요건 후생이고 

   요런거는 불교를 너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도 당시  인도 전통 사상 즉 전설따라 삼천리 처럼 어때요

   그걸 인용을 해서 권선징악적으로 불법을 쉽게 이해하라고 나온 얘기예요. 그때는  좋은 얘기 거리였어요. 그러나

   지금 해탈지도를 추구할 수 있는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받고 수행 할 수 있는 시대에 온 거예요. 옛날엔 이런얘기

   지금도 시골에 있는 할머니를 모아놓고 내가 이런얘기 하면 내 말귀 알아 듣겠어? 못알아듣지.  할머니 이렇게

   하면 아들이 잘되고 요렇게 하면 안돼요. 이렇게 해야 귀에 쏙 들어오고 아 그렇구나  이것하고 지금 우리가 정법

   을 가지고 공부하는건 다른 차원이예요. 여러분들이 기뻐하셔야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정법을 가지고 정진할 만한 정신적 수준에 이르렇다는거예요  여러분들이 있기에 나도

   이렇게 법문 할 수 있는게 나의 기쁨이고 여러분들이 이런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게 기쁨이예요. 지금까지는 이런

   법문을 할 대상도 없고 여러분들이 듣고 싶어도 이런 법문을 들을 곳도 없는 시대를 과거 흘러온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얘기로 흘러온거예요. 그건 하나의 좋은 문화예요.과거의문화 그건 옛날에는 재미있는

   얘기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여러분들이 아직도 그런 얘기를 갖고 계속 우물 딱 주물 딱  하는것은 그러면 다른 종교

   나 진배없는 종교예요.

 

            그러니 이제는 여러분들이 한거풀 넘어야해요. 이제는 스님이 되느냐 안되느냐 결혼을 하느냐   안하느냐

   이런것 갖고 논할 시대는 이미 넘어 버린 시대예요 , 구 문화예요 문화. 과거에 내려온 문화 ! 그럼 문화 니까 존종

   해야되요. 그러니까 스님도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이거 입는 다고 깨달아지고 이거 안입는다고 안깨달아지겠

   어요?  이거는 그거 하고는 아무 상관없는거예요  내가 이것을 거부할 만한 뚜렷한 딴 이유가 없어요. 내가

   이것을 안 입는게 더 낫다 할 뚜렷한 이유가 없어요,  내가 이것을 안 입는게 더 낫다 할 뚜렷한 이유가 있으면

   벗어버리지  그러나 내가 이걸 입고 전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해서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일할 때는 좀 불편

   해요. 그럼 작업복을 입으면 돼죠. 이건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입는게 아니고 그냥 옛부터 입어 왔으니 그냥 입을

   뿐이예요 . 이거 입는다고 좋은것도 아니고 이거 입는다고 나쁜 것도 아니예요. 이건 그냥 문화예요 옷 일 뿐이예요

   그래도 여러분 눈에 이게 익숙한데 내가 이거 안입고 그냥 와가지고 티셔츠입고 와서 이야기 하면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뭔가

   마음에 , 똑같은 얘기를 해도 어때요? 마음에 안다가올거아니예요.

 

            그래서 가능한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서 얘기하는게 좋겠다 익숙한 분위기에서 얘기하는게 좋겠다 이렇

   게 하지마는 이렇게 앉았다고 해서 법문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우리가 뭐 밥상머리에 앉아가지고 둘이서 얘기

   한다고해서 법문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예요. 어쩌면 그 때가 훨씬  법문이 더 깊어질때도 있습니다.

   소재를 꼭 경전을 갖다 놓고 얘기해야 깊어지고 그냥 뭐 인생사 이들이 죽었다 . 남편이 죽었다 어쨌다고 울고

   불고 악을 쓰고 할 때 얘기한다고  그건 세속사가 아니라는거예요.  거기에서 우리 주고 받는 대화도 다 해탈,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로 가면 어때요? 그건 다 해탈의 가르침이예요. 다만 마약 주사처럼 외부에서 주입해서

   일시적으로 고통이 없어졌는데 깨고 나니까 또 괴롭다  이것은 해탈지도는 아니죠. 

 

           해탈은 어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효과가 있는데 그것이 근원적 치료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여러

   분들을 위로하고 비위맞추고 하는 것은 일시적인 마약효과 , 많이 아푸면 몰핀 주사라도 맞아야하잖아요. 그죠?

   그런 효과가 있는 것 뿐이지 해탈지도는 아니예요. 해탈지도라는 것은 법문을 듣고 어떤 이치를 자기 스스로 탁

   깨쳐야해. 아~ 인생이 이런거구나  재물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옳다고 고집 했더니 죽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뭔가 이렇게 어떤 이치를 탁 깨치게 되면 어떠냐? 거기에 어떤 고뇌의 덩어리가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게 공부

   를 해 나가야 된다. 그래서 이 질문은 무엇이든 상관이 없어요. 아파죽겠다고 질문을 하던지 자기 상태를 그냥

   들어내면 되는거예요. 그러나다만 우리가 여기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번뇌로 부터 벗어나느냐 이게 단마.법이라

   는거예요.

 

           그래서 전생 얘기는 재미 있는 얘기 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수행적 차원에서의 전생은 현재 이전을 전생

   이다 보고 현재 이후를 내생이라고 봐라 그러면 과거 전생 얘기들도 다 수용해도 됩니다. 그러나 애가 뱃속에서

   나올 때 부터 현생이고 이렇게 전생 후생을 따지면 그것은 일체유심조의 도리에 어긋난다 이말이예요. 애기가

   태어나자마자 너의 아버지가 왕이니까 너도 왕자다 라고 이렇게 신분제를 정하나, 티벳처럼 한 사람이 죽으니

   까 어느 집에 태어났다 해가지고 그 집에 쫓아가서 조그마한 애보고 나는 린첸(상)뽀다. 이렇게 하는거나 크게

   보면 신분제 사회라는데 별 차이는없죠. 그 아이가 왕자가 되는건 마치 일벌을 로얄젤리를 먹여서 키우면 여왕벌

   이 되는 것 처럼 그 아이를 그렇게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어릴때 부터 위대하게 되

   도록 그렇게 자부심을 주고 키우잖아요. 크게 보면 신분제에 벗어나는게 아니예요.

 

           그런 문화를 존중해 주는거 하고 그것이 진리인거 하고는 별개다. 이 얘기예요. 여러분들은 인도에 가서 인도

   사람들이 강가강에가서 목욕을 하고 기뻐하는걸 보고 "야 쓸데없는 짓마라~~부처님이 그런다고 하늘나라에

   태어 나면 물고기도 하늘 나라에 태어 난다더라 ~"  이러면 안돼요. 그건 뭐다 ? 그들의 문화예요. 그러니

   까 그거는 존중해줘야해요. 그러나존중하는거 하고그게 진리다 그건 별개다 이말이예요. 그래서 문화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존중해야 되요. 티벳불교는 티벳불교를 존중해줘야 되고 남방 불교는 남방불교를 존중해주고 선은 선을

   기독교는 기독교를 다존중해 줘야 돼요. 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의 문화를 장례 치루는 절차고 뭐고 다 존중해줘야

   돼요. 문화니까. 그러나 정말 찬송가 부르면 하늘 나라 에 다가고 이거는 뭐 어떻게 하면 지옥가고 그거는 아니다

   라는 거예요.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냐 하는건 별개 다 이말이예요  그것의 사실을 논하는게 단마입니다.

 

          이 옷이 성스러운 것이냐 이건 문화예요. 이런 옷은 수행자의 옷은 성스러운 것이다. 이건 문화란 말이예요.

   에이 그거 별거 없다. 이러면 안돼요 남의 문화는 존중해줘야해요. 내 문화는 계승해야해요. 그러나 이 문화가

   단마! 객관적으로 진실이다 법이다 이건 아니예요. 우리가 제사 상을 차릴때 처음에 뭐 놓는다? 대추 놓고 밤

   놓고 바뀌면 난리가 난다. 귀신이 오다가 가는줄 알아요  그건 아니예요. 음식을 차리던 차리지 않든 꽃을 놓든

   엎드려 절을 하든  향을 피우던 그건 뭐 일 뿐이다. 문화예요 그러니까 그것들을 어떻게 하든 존중해라 이말이예요.

 

         그러나 그 형식을 가지고 그걸 안하면 큰 일 나는줄 생각하면 안된다 그건 진리가 아니라고 하니까 다 때려

   없애버린다. 이래도 안된다 이말 이예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문화니까 그냥 존중하는거예요 그래서 이 전생

   얘기들은 문화로서 존중하는거예요. 그리고 문화는 우리가 그런 얘기 하잖아 우리도 지금 무슨 일이 생기면 입에서

   저절로 나오잖아. 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그러던지 비가 많이 와도 가뭄이 들면 옛날에는 어때요? 어떤

   남자 있는 여자하고 여자 있는 남자하고 몰래 연애를 하게 되면 하늘이 노해가지고 비를 많이 내리고 벼락을치고

   가뭄을 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찾아내가지고 처벌을 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지 모르겠어

 

          요즘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다 떠내려가야될거예요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거는 문화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객관적 진리와 별개다  이걸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으시어야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공부하는 것은 단마!

   법을 논하는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문화로서 저에게 질문을 하지만 제가 대답을 하는 것은 단마로서의 대답을

   하는거고 그러면 문화는 필요가 없는거냐? 아니다. 문화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게 아니고 옛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해와서 그것이 특별히 현재 사는 사람들에게 큰 해악을 가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자를 차별한다던지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너무 괴로움을 주고 피해가 클 때는 문화는 개선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옛날 문화에는 제사는 자시에 지내야된다 도 농촌사회니까 가능하죠. 요즘 도시사회에서 잘 안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더 쉽죠 . 전기불도 있고 차도 있고 따지고 보면 더 쉬운데도 사람들이 내일 출근

   해야된다 어째야된다  이래서 귀찮아하죠. 그래서 제사 지내는 시간도 바뀌죠. 요즘 태어나는 애들은 부모가

   제사를 저녁 8시에 지내는걸 봤다. 이러면 이 애에게 진리는 뭐예요? 저녁 8시에 제사 지내는게 진리이죠?

   그래서 제사상 차리는것도 이릴때 자기가 본게 진리죠? 평생을 그렇게 봤는데 절에 오면 바뀌놨다말이야  그

   러면 틀렸다고 난리를 피우는거 아니예요.

 

          그래서 그가 틀렸다고 말 할 때도 그를 잘못했다고 말해도 안되고 , 그의 업 그의 견해 , 그의 관습과 다르

   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받아들일 때 " 아 , 당신은 그렇게 했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했다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정해진건 없으니까 이렇게 받아들이면 쉽잖아 . 근데 어디 상놈같은

   짓을 하냐고 그걸 바꾸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건 상놈이나 하는 짓이지 이러면서 옳고 그른것을 구분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게 되는거다. 그런데서 우리가 과거의 문화적 습관을 일상적으로 쓰잖습니까? 스님도 절에서 늘 살

   았기 때문에 불교문화 인도문화에 젖어있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 말을 안 듣고 하면 저게 전생에

   뭐 였기에 말을 안듣는지 이렇게 우리가 문화적으로 쓰는 말이지 진짜 전생에 여우였다 구렁이 였다 이런  얘기

   는 아니란 말이예요.

 

           문화 ! 과거에 그렇게 이해 해 왔다 즉 욕심 많은건 돼지 같다고 말해 왔고 미련한 것은    소 같다고 말해

   왔단 말이예요  그러나 실제로 돼지가 욕심이 많은건 아니고 소는 미련한 게 아니예요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 왔지. 여우는 꾀가 많다하고  욕심 많은건 사람이고 미련한건 사람이지. 소가 아니예요. 소가 들으면 아마

   성질 낼거 예요.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돼지가 들어도 마찬가지고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용어를 쓰는 거예요. 그런 용어를 쓴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적 진리다. 이렇게 이해 하시면 안된다 이거예요 이건 문화예요 불교가 인도에서 일아나서 오다

   보니 거기 인도 문화가 섞여서 오다보니 이런 전생 얘기니 이런 얘기는 단마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 법 이라기

   보다는 인도의 문화예요. 우리나라 에서는 만자(卍) 불교를 상징하지만 인도에서는 힌두교를 상징합니다. 염주

   우리는 불교를 상징하지만 인도에 가면 힌두교에서도 사용합니다. 염주를 가지고 있다고 그 사람들은 불자라고 도무

   지 그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아요.  염주주면 불교인들은 가뻐하지 않아요. 단주를 주면 좋아해요. 왜 ? 단주는 사람

   들이 잘 가지고 있지 않으니 단주는 불교거다 말 할 수 있다 말이예요.

 

           이건 문화적인 문제예요  우리에게는불교지만 인도에 가보면 이건 힌두란 말이예요  오늘 우리들의 문화로서

   오신채 안먹는게 불교 문화죠 ? 그죠? 그래요? 안그래요? 근데 남방불교에 가면 오신채 안 먹는 그런 문화는

   없어요. 오신채 안먹는건 뭐냐 이것도 힌두교 문화란 말이예요. 그런데 이미 우리 문화가 되 버려서 절에서 오신

   채를 먹으면 시비거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안먹는거예요 먹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건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가

   문화는 존중하는거예요  그렇지만 그 문화가 단마, 법은 아니예요 . 그런데서 여려분들 문화를 가지고 진리냐 아니냐

   논쟁을 삼는단 말이예요. 그것을 뛰어 넣으셔야 된다 그게 바로 상에 집착하는 거다.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진리는 언어 문자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언어 문자에  얽매여서 자유로와 지지 못한다 그런데서 전생 얘기를

   했기 때문에 덧붙혀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출처 - 정토회 홈페이지 정토tv 즉문즉설 105편

  

 

       

 

 

 

출처 : 행복한♡인터넷 열린법회
글쓴이 : 무애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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