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는 지혜 - 행복한 인생
행복한 인생
법륜 스님/본지 발행인
사람은 저마다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출세를 하고 싶다. 노래를 잘 불러 인기를 얻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 등등. 또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보면 사실 그 가운데 한 가지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는커녕 가진 것마저 잃어버리고 평생 괴로워하다가 인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방학 때마다 욕심을 내서 공부를 많이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숙제는 3, 4일만 하면 될 정도로 계획을 잡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공부를 하겠다고 계획을 거창하게 짰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이런 저런 일이 생겨서 방학이 끝날 때쯤 되면 다른 공부는 말할 것도 없이 숙제도 제대로 못 끝내서 밤샘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어쩌다 한 번 그러는 게 아니고 늘 그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이면 방학이 열여덟 번인데 그런 시행착오를 똑같이 반복했으니 우스운 노릇이죠. 숙제만 하고 마음 편히 논다고 계획을 세워도 아무 지장이 없었을 텐데, 놀지도 못하고 공부도 못 하니 마음만 불편했지요. 이처럼 우리 인생은 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늘 있습니다. 계획을 세워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첫날 친척이 놀러 오는 바람에 이틀을 허비합니다. 페이지 수를 조정해서 다시 계획을 세웠는데 집에 특별한 사정이 생겨서 사흘을 못 합니다. 그래서 다시 조정을 하지만, 그 때는 몸이 아파서 또 이틀을 못 합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모두 내 잘못이 아닙니다. 항상 공부를 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요. 그런 것처럼 우리 인생살이도 항상 사건의 연속입니다. 내가 행복해질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어떤 일이 있든 어떤 경우가 닥치든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못할 이유를 붙이면 끝이 없어요. 내 행복을 재물과 바꿀 수 없고, 내 행복을 남편이나 아내와 바꿀 수 없고, 내 행복을 자식이나 부모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누라만 저러지 않으면 내가 행복할 텐데……. 자식만 애를 안 먹이면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나,' 이런 식으로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끌어다댑니다. 집이 한 채도 없어서, 남편이 술을 먹어서, 돈이 너무 없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해서 등등 늘 핑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해지는 데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내가 행복하려면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이 끊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문제예요. '내가 행복한가?' 라는 질문은 언제나 자기 자신한테 던져져야 합니다. 어떤 경계에 휩쓸려서 행복하지 못한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이 자신 내부의 문제임을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늘 불행하지요. 내 행복은 그 무엇과도,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행복은 주어진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내 행복을 희생한다고 말한 건 거짓말입니다. 내 행복을 바꿀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 행복은 내가 간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진정으로 내가 원하면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조건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이고 어리석음이라는 겁니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죽음을 앞에 한 순간 후회되는 게 있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삶입니다. '나는 내 삶을 주어진 만큼 만족하게 살았다. 더 살아있다면 할 일이 있겠지만 지금 여기서 죽는다 해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그런 마음이 되어야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됩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누구 탓도 아니고 내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버리고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려서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꼭 잊지 마세요.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까 자꾸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구합니다. 아내가 날 좀 행복하게 해 줬으면, 남편이, 자식이, 부모가,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좀 해줬으면, 내 말을 잘 들어줬으면, 나를 이해해줬으면, 나를 사랑해줬으면, 늘 이런 식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이 말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만족한다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아직 그렇지 못한 주위 사람에게 그 기쁨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잘 쓰이는 것 또한 내 행복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부모라면 자식에게, 자식이라면 부모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쓰임새 있는 사람이 되어야 보람이 있습니다. 부엌에 가서 밥을 해서 다른 사람이 따뜻하게 먹도록 해주는 일도 보람 있는 일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경제적으로 돕거나, 아픈 사람을 위로해 주는 일, 길 모르고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일, 외롭고 쓸쓸한 사람에게 손을 잡아주는 일, 그 무엇으로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부모, 내 형제를 넘어서서 지구 저편에 사는 사람, 더 나아가 내 생명의 근원인 작은 생명이나 산천초목, 일월성신에게도 도움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그들의 고마움을 안다면 그것이 온전히 보존되어 우리 후손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구 저편에 있는 사람들과 그 혜택을 함께 누리도록 지키고 가꾸는 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니 에너지가 부족해서 가격이 오릅니다. 이런 경우,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실컷 쓰고 싶다 하지 말고 내가 쓰는 양을 좀 줄여야 합니다. 음식도 너무 많이 버려서 가격이 오르니 내가 소비를 좀 줄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엄청난 양의 고기를 충분히 생산 공급하려다 보니 광우병과 조류 독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기 소비를 좀 줄여야 합니다.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지면 행복해집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길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나를 위한 길이고, 너를 위하는 길이고,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길입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에게 만족이라는 것,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은 오지 않습니다. 삶의 힘이라는 게 나오지 않아요.
자기의 인생은 자기 책입니다. 이 나라의 운명도, 굶주리는 북한동포도, 인류의 미래도, 모두 다 내 책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좋아서 결혼한 아내나 남편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다 상대방 탓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살아가면 결국 자기가 불행해집니다.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이 혼란에 빠집니다.
우리 모두는 먼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과중한 책임을 무겁게 짊어지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주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자는 얘기입니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이 안 돌아갈 것 같은 과대망상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도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자는 말입니다.
뭇 생명에 대해서도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 뭇 생명이 사실은 내 삶의 토대입니다. 그 뭇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그 생명은 내 일부입니다. 그런 태도를 가질 때 우리 인생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주어지면 이런 일이 좋고, 저런 일이 주어지면 저런 일도 좋고, 때로는 한가하게 명상도 하고, 때로는 부지런히 일도 하고, 그렇게 인연을 따라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행자가 되기 바랍니다.
- 월간정토 2009년 9월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