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 월간정토지]/경전 & 수행문

참회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하는 것입니다.

혜등명 2008. 11. 3. 12:17

참회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하는 것입니다.

 

법륜스님/본지 발행인

 

 

 

     참회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 모든 것은

밖으로 살피면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괴로움인 것 같지만

안으로 살피면

'내가 옳다'는 자기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난 것이므로

모든 법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음을 깨달아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을 때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온갖 업장은 녹아나는 것이다.

 

 

 

  우리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해탈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인 계율을 지키려면 먼저 그 가치관에 동의해야 합니다. '살생하지 마라.' 하는 계율에 대해서 '살생하지 않고 어떻게 사나?'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지키기가 어렵죠. '정말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먼저 마음에서 받아들이는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또 동의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행위의 습관 때문에 계율을 어기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어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지요. 이게 우리들의 모순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참회의 수행이 시작됩니다.

 

  첫째 어기지 말아야 하고, 둘째 어겼을 때는 어긴 줄 알아차려야 하고, 알아차렸으면 되돌아 와야 합니다. 우리가 경계에 부딪히면 순간적으로 자기 방어, 자기 이익, 자기라는 데 사로잡혀 타인을 해치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주거나 타인을 괴롭히거나 속이게 됩니다. 그랬을 때 잘못을 범한 뒤에라도 잘못을 범한 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참회의 수행을 하려면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바른길을 지켜야 하고, 어겼을 때는 어긴 줄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불교 수행은 알아차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참회하라니까 무조건 엎드려 절하면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 이러는데 이건 참회가 아니에요. 이거는 "부처님 복을 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참회하면 재앙이 없어지고 복 받는다니까 무조건 절하면서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참회는 먼저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잘못을 알아차린다고 할 때, 그 잘못의 기준은 뭘까요? 본래 잘잘못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본래는 잘잘못이 없는데 내가 상에 집착해서 잘잘못을 따진걸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참회한다고 하면 '내가 옳고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네가 참회해야 한다.'라든지, '네가 옳고 내가 잘못했으니 내가 참회해야지.' 이렇게 이해하는데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들의 참회입니다. 진정한 참회란, 본래 옳고 그름이 없고 서로 다를 뿐인데 내가 옳고 그름이 있다고 착각한 것을 참회하는 것입니다. 즉 본래 옳고 그른 것이 없으니 상대를 미워하거나 상대에게 화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인데, 내가 내 관점으로 보고 주관을 객관화해서, 옳고 그름이 있다고 단정하여 상대방이 틀렸다고 그를 미워하면서 화낸 것을 참회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참회할 때에는 '잘못'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참회해야 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상대를 미워하고 욕하고 싸우고 한것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이렇게 참회하지 않고 행위 자체를 참회하면 '내가 잘하고 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참회해야 한다.'고 했다가, 다음번에는 '내가 잘못하고 당신이 잘했으니 내가 참횜해야 한다.'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때에 따라 참회를 했다 안 했다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백 가지를 잘했다고 생각할 때 상대방도 다것 가지 정도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면 오히려 '상대가 백 가지 잘하고 내가 다섯 가지 정도 밖에 잘한 게 없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참회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에 관해서는 참회가 안 되겠지요. 이것은 수행이 아니닙니다. 수행은 '일체가 다 내 마음이 짓는 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잘하고 잘못함이 없는 이치를 깨쳐야 백 개면 백 개, 만 개면 만 개 다 참회할 수 있습니다.

 

  제가 참회에 대해서 법문 할 때마다 '왜 나만 참회해야 됩니까?' 하는 질문을 듣습니다. 그러나 참회는 '이번에는 내가 옳으니까 네가 참회하고, 저번에는 네가 옳았으니까 내가 참회하자.'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분별을 일으켜, 어리석음에 사로 잡혀서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욕한 것을 참회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에게 괴로움이 있다면, 미움이 있다면, 화가 났다면 다 참회해야지요. 법의 이치를 깨쳐서 참회해야 진정한 참회가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참회를 그냥 일반적인 수준으로 생각하기 때 문에 '참회가 무슨 수행인가, 참선을 해야 수행이고 깨달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법의 이치를 깨쳐서 참회를 하면 그게 바로 깨달음입니다. 이것은 화두를 깨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치를 깨쳐서 참회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했습니다. "라거나 "용서해 줄게."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용서해 준다는 말은 내가 옳다는 말입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용서할 게 없습니다.

 

 

  바람피운 남편과 계속 살든 말든 그것은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상대를 미워할 일은 아닙니다. 남을 미워하면 나만 괴롭고 나만 손해입니다. 왜 내가 이 고통을 받습니까? 고통은 상대가 나에게 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무지해서, 어리석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받는 겁니다. 이럴 때 스스로에게 고통을 준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해야 합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내 뺨을 때렸다고 합시다. 이 돌발 사태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내 의도와 관계없이 일어난 이 사건은 제1의 화살입니다.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집에 와서 계속 그 사람을 미워하며 '칼로 찔러 버릴까? 몽둥이로 때려 버릴까? 사람을 시켜서 복수할까?' 이런 생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입니다. 그러다 화난다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가족이 뭐라고 하면 가족에게 화내고 싸웁니다. 이것은 제2의 화살에 속하는 것입니다. 뺨을 때린 사람이 만든 게 아니고 스스로 만든 것이에요. 지혜로운 사람은 제1의 화살을 받은 것으로 끝냅니다. 때린 사람을 미워하는 게 결국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되는 것이고, 자신의 고통을 계속 만드는 것이 되는 겁니다. 보복을 하려면 그 사람한테 가서 해야지 왜 자신한테 합니까?

 

  아내가 다른 남자하고 놀아나면 굉장히 화가 나겠지요. 이 말은 아내는 다른 남자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데 나는 나를 괴롭힌다면 말입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입니까? 하루쯤 꽁하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열흘이고 한 달이고 꽁해서 자기 인생을 낭비해 버리면 자신은 언제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소중한 에너지를 남 미워하는 데 쓰느라 정작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쓸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이게 현명한 삶일까요? 남의 행위에 구애받지 않는 게 가장 자기를 위하는 길입니다.

 

  이런 이치를 확실히 깨쳐 알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이혼해도, 남편이 도망가도, 아내가 바람피워도, 사업이 망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시 괴롭기야 하겠지요. 그렇다고 계속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막을 수가 있지만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데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게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헤어지면 헤어진 대로, 같이 살면 같이 사는 대로 좋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남편과 혹은 아내와 헤어졌더라도 상대가 죽어서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가금씩 전화도 할 수 있고, 돈도 보내주고, 또 애한테도 아빠라는 존재가, 또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는 게 좋잖아요. 따지고 보면 유리한 게 많아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살다가 가지 뜻대로 안 되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삶이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으뜸 되게 하는 데 있어요. 그러려면 상처를 입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도리를 알아버리면 됩니다. 이런 이치를 알면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잘살 수 있습니다. 바른 참회 수행으로 자유로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월간정토 2008년 4월호 "수행문3-참회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