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공부 ♡]/법륜스님 법문

[굴레를 벗어나는 삶, 자유] - 화가 난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혜등명 2007. 11. 12. 14:35
 
 
[2007 가을강좌 자유] - 1강 <화>
관리자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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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가을강좌 - 화 이번 2007년도 강좌는 자유라는 주제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생활을 기초로 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삶이 되겠느냐? 이런 방향에서 여러분과 함께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불교의 최고의 이상, 목표 그것은 열반과 해탈입니다. 열반(涅槃)이라는 것은 니르바나(nirvana), 모든 괴로움이 사라져버리는, 모든 번뇌가 소멸되어 버리는 그런 경지를 말합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말한다면 지고한 행복, 완전한 행복. 괴로움으로 되돌아가지 않은 행복.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또 하나는 해탈(解脫)입니다.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속박,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난 완전한 자유, 지고한 자유를 말합니다. 모든 중생을 그 괴로움에서 구제하는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그 일상생활 속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일상생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 여덟번 강의는 여러분들의 일상 생활, 매일 매일 닥치는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가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법문의 소재가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의 하소연을 가지고 그것을 경전삼아 법문을 하려고 합니다. (중생의 아우성, 신음소리, 몸부림을 가지고)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주제는 화, 성냄, 짜증 이 문제를 갖고 이야기를 쭉~ 해보겠습니다.   질문1) 요즘 저는 억울한 마음이 자주 듭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정지선을 못 지키고 건널목으로 돌 진하는 차 앞을 지나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저 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새치기해서 먼저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면서 제가 바보 같기도 하고 억 울한 마음이 들어요. 규칙, 질서, 규율을 잘 지키려고 하는데 자꾸 억울한 마음이 드니까 규율을 지키고 싶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2) 안녕하세요, 스님. 스님의 법문과 수행을 통해서 삶의 변화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되 는 내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고 행복하면서도 이상하게 단 한 가지만은 양보할 수 없는 제 마음을 봅니다. 남에게 제 험담, 가족의 험담을 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 거의 이성을 잃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어 머니가 무척 싫었고 내 모습이 땅으로 꺼질듯 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떻게 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화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질문3) 수행을 하면서 첫 기억이 떠올랐는데 세 살 때 엄마가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저를 “신발 어디서 잃 어버렸노?” 하며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리는데 제가 맞지 않으려고 동네 골목길을 숨이 차게 도망 다니는 모습인데 참 무섭고 억울하고 현실에서 조금만 잘못해도 큰 일 날 것 같아 내 스스로 잘못하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살았는데, 지금 제 아이에게 조그만한 잘못된 것이 보이거나 내 식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난 화 가 순식간에 올라옵니다. 어머니에 대해 이해하는 기도를 해봐도 현실은 자동으로 화가 올라오고 저질러 버립니다. 이 화를 알아차리고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요? 공감이 갑니까? ^0^ 질문4) 어릴 때부터 부부 싸움을 비롯해 집안 사정에 늘 신경 쓰며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저의 업 이 나이 서른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계속 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아버지는 일을 하지만 허황된 꿈만 꾸 며 수입이 없은지 10년이 되어가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꿈같은 말 한 마디에 기대했다 실망했다 하며 정 신적 육체적으로 병을 얻어 힘들어 하십니다. 한 달에 백만 원이 되는 돈으로 생활비에, 진 빚에 혼자 벌어 이런 집안을 꾸려가니 참으로 힘듭니다. 오 빠가 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집안을 돌보지 않을 수도 없고 하기 싫은데 해야 하 니 더더욱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를 다잡기 위해 이번 천일결사 입재도 하고 수행을 해보지만 자 꾸 화가 올라오고 잘 되지 않습니다. 스님 제가 지금 어떤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요. 질문5) 스님 법문을 듣고 믿고 하기에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남편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한번 올라오면 참느라 무척 힘이 듭니다. 오래전 사업부도와 카드빚으로 50대 중반인 지금도 헤어나지 못하는 데 미움이 시작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남편에게 말 한 마디 못하는 게 제, 못하는 제 입장은 남편이 그 돈을 어디 썼다는 것만 알면 좀 속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심조심 물어봐도 대답이 없어요. 답답한 제 마음 좀 풀어주세요. 죽을 때까지 빚만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미칠 것만 같습니다. 1) 화가 난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첫째, 제일 쉬는 방법은 화를 낸다. "화가 나면 화를 낸다." 괜찮아요. 그러면 안 되다 그런 건 없어요. 그런데 화를 내면 고함을 지르게 되고 그러면 목이 아프고 열이 난다.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고 하고, 때로는 자해도 해버립니다. 그런데 화가 나서 화를 내면 그 결과 첫째, 내 건강이 안 좋습니다. 두 번째는 상대를 해치거나 나를 해치면, 뒤에 받아야 할 과보가 매우 큽니다. 화가 난다고 상대를 한 대 때리면 폭행죄로 감옥에 가던가. 아니면 상대로부터 이자를 부쳐 더 두들겨 맞든지 합니다.   그러니까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안되는 게 아니라 화를 낸 결과가 아주 나쁩니다. 그런데 내가 화가 난다고 화를 냈는데 아무련 결과 없고 좋으면 내도 됩니다. 화를 벌꺽 냈더니 수입이 엄청 올랐거나, 건강이 좋아졌거나, 친구가 돼 버렸을 경우는 내도 됩니다. 그래서 첫째, "화를 내면 안 된다"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화가 났을 때 화를 내면 100%는 아니라도 99%로는 재앙이 따릅니다.   쥐가 배가 고픈데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다. 그것만 생각하면 먹는 게 당연하지만 그것에 쥐약이 들었다면 안 먹는 게 좋습니다. 쥐가 쥐약을 먹을 경우, 그때 첫째 모르고 먹고 죽게 되거나 두번 째는 쥐약이 들은 줄은 알았는데도 너무 너무 배가 고파서 먹게 되었다. 이런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쥐약이 들었다 하면 더이상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고픈 사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더 나쁜 과보, 더 큰 과보가 오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마치 배고프다고 쥐가 쥐약을 먹는 것하고 같아서 그 결과가 아주 나빠닙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 화를 내지 마라! 배가 고프더라고 쥐약인 줄 알면 먹지 마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   그래서 두 번째 길은 화가 나더라도 화를 밖으로 내지 마라. 배가 고프더라도 쥐약인줄 알면 먹지 마라. 과보가 따른다. 그러면 화가 일어났는데 화를 밖으로 안 낸다는 말은 '참는다!' 이 말이죠? 그래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렇게 말힙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참으면 내가 괴롭고, 참는 대서 생기는 게 스트레스고 화병입니다. 화가 난다고 다 내버리면 스트레스도 안 생기고 화병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바보같이 참아가지고 화병이 생기느냐~? 그건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화를 참으면 첫 째, 병이 생기고 두 번째는 참는 데는 항상 뒤에 따라오는 한도가 있습니다.(횟수) '한 번 참고 두 번까지는 참는데 삼 3번째는 못 참는다.' 이것이 터지면 폭탄 같아서 숫제 화가 일어날 때 화를 내는 것보다 과보가 더 커지고 더 심하고 큽니다.   화가 난다고 바로 때리거나 죽이는 법은 없습니다. 이럴 경우는 그 사람이 화를 여러번 참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고, 폭발력입니다. 터져버리면 숫제 일단계보다 더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로 참는 사람은 힘이 약한 사람들(여자, 약자들 등)이거나 약자들이 참습니다. 그래서 한번 터지면 더 폭발적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현상으로 어떤 폭동이 일어난다 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일으킵니다. 부부지간에 살해을 할 때 아내가 남자를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참았다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는 것보다는 참는 게 좋은데 참는 게 따른 두 가지 부작용으로 하나는 병이 나거나 또 하나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더 큰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은 완전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참는 것은 좋은 길이긴 하지만은 해결책은 아닙니다. 그래서 참는 것은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까진 되는데 이것을 수행이라고 이름 부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과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여름에 서리가 내린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이런 것들은 약자들이 참았을 때 폭발해서 나타나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바입니다.   셋째, 그러면 적어도 수행이라고 그러면 어떠냐? 이런 과보가 따르지 않는 그런 정도가 되어야 수행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한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과보가 따르고 참으면 병고의 과보가 따르거나 폭발하면 더 큰 재앙이 오고.... 이 화로 인해서 나타나는 이러한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해결책은 화가 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수행은 참을 것이 없는 경지입니다. 참을 것이 있어서 참는 것까지는 아직 수행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못 참고 터지는 것은 하수고, 참아서 이겨내는 것은 상수인데 그러나 참는 것은 수행의 문턱에는 아직 못 들어옵니다. 참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참을 것이 있으면 인욕이라 말하고, 참을 것이 없는 단계로 가야 인욕바라밀이라 합니다. 이를 악 다물고 끝까지 참으면 인욕이고, 인욕바라밀이다 하면 참을 것이 없어야합니다. '용서를 못해준다' 이것은 범부중생이고 '원수라 하더라도 용서해주자' 하면 현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행은 아닙니다. 수행의 경지에 들어온다는 것은 용서 해줄 것이 없어야 합니다. '남의 것 얻어먹고 살겠다.' 이것은 범부중생이고, '베풀겠다.' 이때는 반드시 이자를 붙여서 받겠다는 마음입니다. 거기에는 과보가 따릅니다. 그것은 보시지만은 과보가 따르고 재앙이 따릅니다. 그래서 베풀되 받으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복을 짓되 받려는 생각이 없어야 보시바라밀이 됩니다. 즉 무주상보시입니다. 이 경지로 가야 우리가 '해탈이다! 열반이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화를 가지고 어떻게 공부(수행)을 해야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즉 화가 나지 않은 참을 것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가? 현실은 화가 나요, 안나요? 나죠? 저나 여러분들이나 화가 납니다. 그러나 화난다고 다 내는 게 아니고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 난다고 화 다 내는 사람 없습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거나 참거나 둘 중에 하나고 또 참았다가 터져서 화를 더 크게 내기도 하고..... 그러나 여기 우리의 고민은 화가 나면 화를 내느냐, 화가 나도 참아야 되느냐, 어떻게 참느냐 이 정도가 우리의 관심사에 있습니다. 이것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가르쳐요. 윤리 도덕으로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칩니다. 불교가 그 수준이라면 굳이 불교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입니다. 적어도 지혜로운 붓다의 가르침이라면 이 단계를 넘어서 다음 이야기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적어도 지금은 화가 나지만 그래서 때때로 참고 터지만은 그러나 나의 목표는 '화가 나지 않는 경지로 가고 싶다! 이게 나의 목표다.' 그러면 과거도 없고, 부작용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 한다면 세 가지정도의 길이 있습니다. 첫째, 참회의 방법이 있습니다. 참회란 뭔가? 이 화가 나는 문제를 나의 문제로 보고 나의 어리석음이 원인인줄 알고, 내가 그것을 돌이켜 참회하는 것!!! 여기 질문 속에서도 나와 있지요?   법문을 듣고 참회를 하는데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왜 내가 참회를 해야 하는지 지금 저 사람이 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도 용서를 해 줄까 말까하는 정도인데 꺽구로 내가 참회 한다 하니까 수행하면 화가 없어진 게 아니라 수행 중에 화가 더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회하다가 염주를 집어 던져버리고 "왜 내가 해야 되느냐?"고 이렇게 화가 치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참회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원리가 있어요. 예1)여기 지금 물컵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와서 스님 드시라고 편하라고 여기다 놔뒀다. 그런데 제 생각에 잘못하다가 떨어뜨릴 위험이 있어서 안전한 자리에다 나뒀다 그런데 갖다 준 사람이 조금있다가 오더니 다시 당겨놓고 간다. 이럴 때 화가 싹 생깁니다. 그렇다고 말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화가 커집니다. 그러다 상대의 실수로 물컵이 넘어져 옷을 적셨을 경우 화가 팍 터집니다. 이럴때 화난 원인을 상대한테 돌립니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는 편한 곳에 갔다 놓았는데 내가 불편한 곳에 갔다 놓다를 서로 반복해도 아까처럼 똑 같이 화가 일어난다. 그러다 내 실수로 물컵이 떨어지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똑같이 물컵이 엎질러졌는데 한쪽은 화가 나고 한 쪽은 왜 화가 안 납니까?   예2) 내가 배를 타고 나갔는데 빈 배(바위)와 부딪쳤을 경우와 사람 탄 배와 부딪쳤을 경우, 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경우와 다른 사람 발에 걸려 넘어졌을 경우 부딪침과 넘어짐은 똑같지만 화를 내는 게 다릅니다.   물컵이 넘어졌기 때문에 화가 난다! 배가 부딪쳤기 때문에 화가 난다! 넘어졌기 때문에 화가 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건 아닙니다. 결국은 ‘내가 잘하고 네가 잘못했다.’ 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내가 잘했다.' 이건 내 생각입니다 이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보면, 확실히 내가 잘했습니다. 그런데 상대편 입장에서는 자기는 자기가 또 잘했습니다.   왜냐면 그 사람도 자기를 중심을 두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말에 "핑게 없는 무덤 없다." 이런 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자기를 기준으로 놓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 자기 생각이나 행동에 자기 나름대로는 이유(원인)가 있습니다. 남편이 늦게 술 먹고(바람피우고) 들어와도 남편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있고, 다 제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는데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유가 없어. 미쳐도 유분수지……. 이런 원리 때문에 “내가 옳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강도가 크면 클수록 화는 커집니다. 완전히 사로잡히면 살인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화가 나는 것이 "내가 옳다"는데 사로잡히는 강도가 얼마나 세냐에 따라서 커지 고 작아집니다. 옛날에 먹고살기가 힘들 때는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보다 생활비 갖다 주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럴 때는 바람피우고 안 피우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생활비를 제 때에 갖다 주느냐가 중요했는데 요즘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니까 이런 경우에는 다른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행위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해서 내가 의미부여(정당성)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일이 큰 일이 되기도 하고 작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일 자체는 큰일도 작은 일도 없습니다. 큰일, 적은 일은 나에게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죽는다 어쩐다 해도 옆 사람이 볼때는 아무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는 사실은 다 자기 문제입니다. 이것은 내가 옳다고 고집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놓아버리면 같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내가 옳다 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다를 뿐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내가 옳다 하는 것을 내려놓는다!!! 내가 옳다 하는 것을 내려놓는 방법은 상대편 입장에 서본다.(이해한다.) 상대편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내 옳다"는 것이 내려놓아집니다. 상대편 입장에서 안서고 "내 옳다는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라고 아무리 해봐도 안 내려놓아집니다. 그래서 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방법은 "상대편 입장에서 바라본다!" 상대편 입장에서 바라보니까 내 마음 속에서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럴 수도 있는데 왜 내가 화를 내고 미워했을까? 내가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원리에 의해서 기도는 첫째,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잘못하고 내가 잘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잘못하고 당신이 잘했구나.'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데, 내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내 생각을 고집함으로 해서 상대를 미워했다. 그러니까 미워한 게 잘못됐다. 화를 낸 게 잘못했다." 이 이야기입니다. 고로 내 잘못이란, '나는 잘했고, 남편이 잘못했다'고 생각한 이것이 잘못되었다. 본래는 옳고 그름이 없는데 '내가 잘했고, 네가 잘못했다' 하는 데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본래의 상태로 돌아서보니 '내가 화를 내거나 내가 미워한 이것은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서 쫓기는 것처럼 몽상, 허상에 사로 잡혀서 생긴 일이구나.' 그래서 이것이 잘못했구나. 그러면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참회하는 것은 상대편 입장에 서서 본다면 나의 이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회를 하게 되면 화가 사라져버립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가장 현실 속에서 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참회의 바른 정진이다. 두 번째 원리는 남방불교(근본불교)에서 하는 비파사나 수행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화가 났을 때 화를 내거나 참는 게 아니고,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났다는 것을 다만 알아차린다." 이 길이 화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누가 화를 냈을 때 "아니, 왜 화를 내?" 그러면 거의 다 "왜 내가 화를 내?"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즉 무지상태에 빠지고 앎이 없어집니다. 화가 났을 때는 자기가 화가 난 상태를 알아차려지지를 않습니다. 화가 났을 때 화를 참아야지 하는 것은 일반적이기 때문에 수행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화가 났을 때 참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화가 났을 때 화가 난 줄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이건 힘이 하나도 안 듭니다. 그래서 화를 참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지금 화가 나 있구나.'를 알아차립니다. "화가 나있구나!!" 이렇게 화가 남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지 마세요.   첫째 단계, 화가 났을 때 화가 난 줄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건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예, 교실의 아이들이 떠드는 과정...) 화가 많이 나버리면 화난 줄 알아차린다 해도 진정이 안 되고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화가 일어나는 초기에 알아차리면 금방 없어집니다. 그것처럼 화가 일어나는 아주 초보적인 상태에서 알아차리면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깨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하는가? 화가 일어나는 그 초입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금방 알아차림과 동시에 사라집니다. 그래서 공부가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느냐가 중요합니다. 미세하게 감지될 때, 초입일 때 알아차리면 그냥 없어집니다. 이것은 마치 밭에서 잡초를 뽑을 때 잡초를 초기에 없애는 것하고 잡초가 커버렸을 때 없애는 차이가 큰 것처럼……. 화가 일어날때 그 미세할때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깨어있음이 있다면 , 힘이 있다면 실제로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가 안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는 순간 화를 알아차려버립니다. 그러면 이 공부법은 뭔가? 미세한 상태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는 연습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명상입니다. 명상을 할 때 알아차림을 연습을 하려면 집중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 호흡을 알아차림, 더 나아가서는 호흡을 통해서 코털이 흔들릴 정도의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림, 그 다음엔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림, 그 다음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은 느낌(필링)을 알아차림, 마음 작용……. 이렇게 알아차리기입니다. 이게 깨어있음!!! 이런 말이다. 그 다음에 세번째 원리,선(禪)적인 도리로 돌아오면 어떠냐? 화가 일어났을 때 " 왜 화가 일어나느냐?" 원인을 참구하기!!! 지금까지 이것 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라면 화가 일어난 당처, '왜 화가 났을까?' 이렇게....! 화가 일어 날 때마다 "너 때문에" 하지 말고, "왜 이게 일어날까?" 이렇게 그걸 참구해 들어감으로 해서 화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나 이 알아차리기를 통해서 화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이렇게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 방법은 우리 정토회 같으면 명상을 할 때 거기 와서 일주일 들어와서 연습을 합니다. 그 다음에 원인을 참구하기! 이것도 혼자 못합니다. 왜? “너 때문에 그렇다 ” 여기까지만 찾고 더 이상 안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원인이 아닌 것을 가지고 근본원이라고 자기 혼자서 생각해가지고 거시서 스톱을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가야합니다. 그러면 내가 알 수 있는, '이것 때문에 화가 났구나' 라고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그 어떠한 답도 사실은 아닙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내가 경전을 보고, 스님 법문을 듣고, 내 스스로 찾고, 어떻게 해서 낸 답도 답이 아닙니다. 이게 답이라면 문제가 쉽습니다. 이게 답이라면 선이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통해서 낸 답이, 답이 아닐 때는 , 그게 원인이 아닐 때는 더 이상 할 게 없잖아요.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는 결론이 난 거기서부터 선(禪)이 시작됩니다. 그 전에는 선이 아니고 망상입니다. 그러니까 망상인 단계를 거쳐야한다. 모든 노력을 통해서 일어났던 모든 경우가 다 아닌 줄을 알고부터 이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생각을 일으켜서 낸 답도 답이 아니니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가 생각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지금부터 생각을 끊어야지!'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생각을 먼저 해야 됩니다. 생각을 해서 그 모든 생각에서 무영지물이 되어야 생각이 끊어집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하지 말고 직시하라!" 화가 일어나는 당처를 그냥 그대로 직시해야지 생각을 내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결론이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경험을 해야 됩니다. 직시를 통해서 당처를 알아차리면 그냥 싹 사라져버립니다. 그것은 마치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어둡다고 불을 밝혀라 해도 눈을 감고 있는 이상 밝아지지 않듯이 꿈에 강도에 쫓기던 사람이 아무리 도망을 가도 강도가 뒤 �아오는데 눈을 딱 뜨면 해결이 돼버리듯이. 눈을 뜨면 밝아지고 다 해결이 됩니다. 그럼 "이런 경험을 한 번 해봅니다!!!" 그러려면 깨달음의 장을 가봐야 합니다. 깨달음의 장이라고 하는 수행에 가서 한 번 경험을 해봅니다. 경험을 해본다해서 다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 말로서 설명이 아니고 자기가 그것을 알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서 연습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이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뭐겠어요? 이렇게 일정한 시간, 집중하지 않고도 여러분들이 하루에 한 시간씩 100일 하면 100시간이 되죠? 그러면 24시간씩 나누면 한 4,5일 되죠? 그러니까 명상수련이나 깨달음의 장은 한꺼번에 100시간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24시간을 5일 동안 풀로 집중시키는 곳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못 오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하루에 한 시간씩 100일을 내서 해보는 겁니다. 오늘 그 방법(하루에 1시간씩 100일 기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질문자1 기도법) 이 경우는 매일 눈뜨자마자 108배, 한 시간씩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느나? "내가 옳다" 여기로부터 화가 일어나는 원리를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원리를 알고 시작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안됩니다. -참회문 -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 모든 것은 밖으로 살피면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괴로움인 것 같지만, 안으로 살피면 '내가 옳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난 것이므로 모든 법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음을 깨달아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을 때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온갖 업장은 녹아나는 것이다. " 즉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 놔야 됩니다. 거기로부터 일어납니다. 이 경우는 어떻게 절을 하면서 마음을 내야하느냐? 108배 절을 하면서 한 번 할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내야 합니다. “부처님,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할려는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옳고 그름은 내가 만든 상입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100일 동안,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대뇌이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됩니다. 즉, 새치기 하는 차를 봐도 줄을 안서고 새치기 하는 사람을 봐도 '아따, 저사람 되게 바쁜가보다~. ' 이렇게 생각이 들고, 이렇게 그것을 봐 내는데 포용력이 생깁니다. 요지는 “모든 것은 다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이 말의 원리는 제법은 다 공한 것입니다. 저 사람 되게 바쁜가보다. 먼저 비껴줘라.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게 공입니다. ‘이 자식이 어디 줄도 안서고 세치기 해,’ 이게 색입니다. 공이라는 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옳고 그르고를 고집하는 게 색이고, 옳고 그른 것이 없는 게 공입니다. 그러니까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이다" 이것을 만 번을 해봐야 해결이 안 됩니다. 그걸 만 번을 하는 것보다 “아따 그 사람 바쁜가 보다 조금 비껴줘라 ”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게 해결책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내지 못하는 내 자신을 돌이켜보고 뉘우치고 참회를 해야 됩니다. 질문2 기도법) 핵심은 우리 엄가가 내 험담을 하거나 가족 험담을 할 때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난다. 이럴때는 108배 절을 하면서 “부처님, 제가 너무 어머님을 답답하게 했는가 봅니다.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하면 가족 험담을 하셨겠습니까? 제가 참회하니, 어머니,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이렇게 마음을 내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질문3 기도법) 어릴때 신발을 잃어 버렸다고 엄마한테 두들겨 맞은 거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 자기애가 조금만 잘못해도 화를 내고 두들겨 패는 문제입니다. 내가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나는 오히려 그렇게 안해야 되는데 그 상처가 도리어 더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의 잘못에서 생기는 게 아니고, 바로 내 상처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이때는 기도를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도 “ 부처님, 그때 우리 어머니도 마치 저 같은 심정이었나 봅니다. 어머니를 이해하겠습니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핵심은 '어머니도 나를 키울 때 지금의 저 같은 심정이었나 보다.' 그래서 어머니를 이해를 하게 되면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사라집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런 어머니를 제가 이해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커서 애를 키워보니 그때 엄마가 이해가 됩니다." 애를 괴롭히려고 애를 못살게 굴려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러면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사라집니다. 아이에 대한 기도 “아이야, 그때 나는 무섭고 억울했다. 너도 그렇겠구나. 미안하다. 부처님, 제 어릴 때를 생각하면서 제 아이를 이해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경험이 오히려 나쁜 행위의 원인이 되는 게 아니고 자기의 경험이 도리어 아이를 이해하는 원인이 된다면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보다 이런 경험이 있으므로 해서 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집니다. 이것이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지만 밭에 가면 거름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어릴 적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나는 더 훌륭한 어머니가 되는 지름길이 됩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어릴 적 경험이 꺽구로 나쁜 어머니가 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한 생각을 딱 뒤집기만 하면 그대로 좋은 어머니가 되는 기초가 됩니다. 그럴러면 지금까지 내 업과 습관이 나쁜 쪽으로 작용을 했는데 여기서 기도를 해서 생각을 바꾸게 되면 오히려 좋은 쪽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질문4 기도법) 어릴때 엄마 아버지가 부부 싸움을 많이 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고 지금 아버지는 무능력하고 또 집에 와서 엄마한테 감언이설 하고 엄마는 아버지 말 따라 실망했다 기대했다가 하고 생활력은 없고, 내가 얼마 안 되는 돈 벌어다 부모 봉양하고 사는데 딴 친구들 생각하거나 딴 집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 괴로움에 대한 호소입니다. 이런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은 부모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해야 오히려 재앙이 사라지고 복이 옵니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를 낳고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이제 제가 컸으니 부족하지만은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겠습니다. 부처님, 저는 진실한 불자가 되겠습니다. “ 이렇게 마음을 내는 기도를 해야 그래야 이 재앙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지금 이 질문 속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같이 꺽구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쥐가 쥐약을 먹듯이 했기 때문에 배고픈 것이 해결되기는 커녕 도리어 죽게 되었습니다. 질문5 기도법) 남편이 빚을 져서 죽을 때까지 갚아도 못 갚게 되었다. 그건 괜찮은데 어디에 썼는지 말을 안 해 그것 좀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런 생각입니다. 평생 갚아야 된다는 막막한 부담 감, '알고나 갚았으면 좋겠다.' 이럴 때는 모르는 게 약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기도를 하느냐? “부처님, 감사합니다. 전생에 지은 빚 잘 갚고 가겠습니다.” 말 못하는 남편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말 안하는 남편을 보고 내가 답답하지만은 그걸 묻는데도 말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남자는 더 답답합니다. 그러니까 '그 말 못하는 남편이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이 생각을 하게 되면 오히려 말 안해준다고 불평했던 게 사라집니다. “저는 진실한 불자이기 때문에 복을 짓되 복을 받지 않는 그런 보살이 되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합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화가 난다. 왜냐하면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 방법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화가 나는 그 당처, 그 뿌리, 그 근원을 참구하는 방법이 있다. 이건 화두다. 두 번째, 화가 날 때, 화가 남을 알아차린다. 항상 깨어있다. 그런데 그 화가 일어나는 순간 찰나에 깨어있으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래서 화가 나지 않는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놓쳐버려 화를 내 버렸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내가 놓쳤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된다. 그래서 뭘 해야 되나. 참회를 해야 된다. 화가 남을 놓쳐버리면 내가 옳다는데 확 사로잡혀버린다. 그래서 내가 상대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된다. '아, 내가 놓쳤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어머니, 아버지, 남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는데…….' 원리가 본래 이런데 내가 깜빡 놓쳐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그 벌로 절을 한다. 절이라는 거는 내가 옳다는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일어나는 몸의 모습이다. 그래서 오체투지, 몸의 다섯 군데를 땅에 데어야 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완전히 놔버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절을 하면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아, 당신의 마음이 그랬군요." 경우 경우 따라서 마음을 내여 100일정도 기도를 하면 내 꼬락서니를 알게 된다. 내가 내 생각에 싹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보통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 아는 것은 거짓말이다. 어떤 사람은 법문 듣고 고쳐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0일 기도하다가 고쳐지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100일쯤 하면 자기 꼬락서니를 조금 안다. 이렇게 안다고 다 안 고쳐진다. 한 3년이나 해야 조금 고쳐진다. 고쳐진다는 뜻은 안 죽고도 운명이 바뀐다. 이게 부활이다. 안 죽고도 바뀌는게 보디사트바(보살), 거듭 태어난다. 몸뚱이가 죽고 새로 태어난다 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걸 윤회라고 한다. 몸뚱이 안 바꾸고도 새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부활이다. 몸가지고 논하는게 아니다. 부활을 하려면 수행을 해서 새로 태어나는 것. 그렇게 정진을 해나가야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무슨 운명타령 같은 것 안해도 된다. 얼굴생김, 생년월일, 전생, 출신배경, 남편, 자식,...이런거하고 아무련 상관없이 누구나 다 해탈할 수 있다. 사주팔자 아무 상관없이 누구나 해탈할 수 있다. 누구나 이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느 곳( 장소), 어느때(시간), 누구나( 사람) 상관 없이, 관계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 길로 나아가려면 첫째, 이치를 알고, 두 번째,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운명이 바뀐다. 중생에서 보살로 나아가서 부처로... 이렇게 자신의 운명이 바뀐다. 종노릇하다가 주인으로 인생이 바뀐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