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1박2일 단독여행의 감회!!!
작년 겨울(2006년)에 동네고향 친구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그랬다.
자기는 고향에 연고가 없으니 내려 갈일이 별로 없어
해마다 결혼 기념일에 남편과 아버지 산소를 들려 고향을 휙 둘러 온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그렇게 하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
그날 집에 돌아와 바로 남편과 이야기 해서
"내년부터는 결혼기념을 아버지 산소를 찾는 걸로 하면 좋겠다" 했었다.
(내 주장이 더 강했지만....^^*)
드디어 결혼기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11년만의 일이다.
막상 4월이 다가오니 여러 일정들이 겹친다.
그리하여 온 가족의 여행은 결국 3일전부터
혼자만의 여행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하루전에 남편의 고심 끝에 흔쾌한 마음으로
아줌씨 혼자만의 1박 2일 여행으로 결정이 내렸다.(야호!!!)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기왕이면 하는 맘에
4월 29일 전주 '기린원'에서 모이는 중학교 동창모임에 맘이 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금/토 말고, 토/일 여행이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일요일 '주말농장 분양가족' 첫 모임에는 참석을 해야 한다 한다.
(나는 모르는데 너가 참석을 안하면 말이 되느냐 분양 첫날에 ^^* 한다.)
넘 욕심내지 말라 한다.
그래서 첫 여행을 넘 욕심부리지 않기로 하고
이번 중학 동창모임은 포기했다.
드디어 상상도 못했던 단독여행의 날이 왔다.(한 3년은 앞당겨진 느낌!)
27일 아침 의정부 시외터미널에서 첫차(7시 10분)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을 먹고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자가용에 몸을 싣고 난 후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 지금 무슨 느낌인 줄 알아?
꼭 20대에 1박2일 덕유산 단독산행을 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한 것 같아.
기쁨과 설렘, 염려가 그때 그 기분하고 비슷해" 했다.
이렇게 해서 난 전주를 향하는 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다.
먼저 보절 갈치에 누워계신 아버지 산소를 향해서~~~~~~~~~.
인천에 계신 엄마와 오빠, 언니 말고는
내가 고향으로 단독 여행길에 올랐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전주 오빠들한테도 버스에서 달리면서 처음 알렸고....
산서 사촌외삼촌댁에도 만 11년만에 갑자기 나타났다.
아마 결혼식장에 본 후 처음일것이다.
재미 있는 이야기는 불혹을 넘긴 아줌씨가 홀로 여행을 왔다하니가
60을 바라보시는 어른들은 눈이 휘둥그레해지면서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 왜 혼자 내려 왔느냐. 정말 별일 없느냐?" 하는 질문을 연거푸 하셨다.
큰삼촌은 엄마한테 확인전화까지 하셨다 한다.
이렇게 4월 27일 금요일, 토요일 여행은 시작되었다. .
통화 했을 때만 해도 막네오빠가 오늘은 넘 바빠서 함께 할 수 없을거라 하셨는데
갑자기 업무상 약속 2건이 취소되여 아버지 산소 다녀오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하시면서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마중을 나와 아버지 산소을 편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넘 좋았다.
덕분에 그 짧은 운행시간 짧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아직도 쫑알쫑알 할 야긴 더 많지만^^*)
<이 통나무 다리를 건너야 아버지 산소에 갈 수 있다.>
<10년만에 찾아간 아버지 산소 봉분 가운데가 조금 가라 앉아 있었다.
관이 삭아서 내려앉은 모습이라 한다.>
그리웠던 나의 고향 약촌도 오빠의 배려로 잠시 구경까지 할 수 있었다.
(아님 시장에서 자전거 빌려타고 다시 오려 했었는데....덕분에 구경은 짧았지만 시간은 절약!)
<내가 제일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나의 어린시절 우리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
청룡모퉁이↑와 진또리 했던 묘지!!!↓>
<유일하게 이곳만이 세월과 함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아마도 산 주인의 조상님이 계신 곳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얼마나 반가웠던지 원~!)>
<청룡모퉁이와 어릴적 우들의 놀이터 묘지 전경!
저 묘지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
저기 소나무와 함께 있는 큰 바위는 우리들의 쉼터!!!(바위가 파란비닐우에 가려졌군!) )
그런후 오빠는 날 다시 이룡리 산작로를 걸쳐 산서 동화리에 나를 내려 놓고
오빠 먼저 전주로 올라가셨다. 그때가 오후 2시 30분경!
그곳에 내려 먼저 사촌외삼촌댁을 방문하여 결혼 후 11년만에 아줌씨 모습을 보여드리고
몇몇 고향 친구들의 반김 속에서 고향의 모습을 디카에 담아왔다.
한 친구의 자전거에 몸을 싣고 초등학교을 구경다녀와서는
중학교와 약촌과 중학교의 지름길, 이룡리 버드나무까지는
혼자서 자전거 타고 두루 두루 구경을 했다.
(이때 그 친구는 중학교는 재미없다 해서 자전거만 빌렸다..... ^^*)
<초등학교 3그루의 느티나무!
앞의 교실은 사라져버리고 저렇게 휭하니 아이들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초등하교 느티나무 옆에서 바라다 본 영대산 줄기의 모습!!!>
<그리도 궁금했던 중학교 모교! 옆 논에 고등학교가 설립된 후 처음 가본 것 같다. >
< 학교 정문을 나오려다 다시 한 번 이곳을 둘러보니
저 멀리에서 학생들이 나와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수업이 끝난나 보다.>
한 친구의 자전거는 괜찮은지원~.
해순이 가게에서 중학교, 이룡교를 거쳐
이룡 버드나무를 다녀오는 동안
한 3번은 콰당하고 길에 자전거를 내동댕이 쳐야했다.
그것도 꼭 내리다가 그랬다....
한 번은 중학교와 약촌간의 개울건너 논두렁 지름길의 추억을 더듬고자
그곳에서 내리려는데 앞에 트럭을 멀치감치 피하려다가 그만 질은 물구덩이로 넘어져버렸다.
엉덩이는 흙투성이가 되고 자전거 뒤 짐실은 곳은 삐그득 어긋나 있었다.(다시 맞춤)
그리하여 옷에 많이 묻은 흙을 닦아내기 위해 개울가로 내려가 옷을 씻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한발자국 앞에서 또아리틀고 있는 뱀이 보였다.
그때부터 난 풀숲이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난 이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아라"을 놓치고 말았다.)
<더 가까이가서 찍고 싶었는데 무서움이 일어나 차마 그러지를 못했다.
단지 뱀은 내가 가기 전부터 저 자리에 있었을 터인데 나의 한 생각 때문에....^^*)
<그곳 근처 논두렁에 피어있는 자우영꽃!
그때 그 시절에는 논 전체가 자운영 꽃이였는데 지금은 없었다. 풀피리 불었던 풀만이 가~득!!!>
<이 길은 내가 중학교 시절에 운동화에 이슬을 먹이며 다녔던 등교길이다.
그땐 이렇게 반듯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넘 반듯하여 정겨움은 덜해보였다.
위 자운영 꽃은 저기 오른쪽 두번째 논두렁에 피어 있었다. 더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개울 풀숲에서 보았던 뱀이 생각나 깊이 들어가지를 못했다.>
<위 논두렁에서 중학교를 가기 위해 건녀야 했던 개울!
지금은 이렇게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 그땐 개울가에 나무숲도 있었고 이곳은 징검다리였는데....
비가 많이오면 건널 수 없었던 이 길! 그럴때면 이룡리 오룡 큰길로 돌아서 학교엘 다녔는데...>
<이 또한 궁금했던 이룡리 버드나무!
중학교 시절 야간학습하고 어둠 뚫고 이 옆을 지날때면 참 무서웠었는데...
지금은 이 버드나무 옆으로 성계로 가는 반듯한 시멘트 도로도 나 있었고, 가로등도 보인다. >
그러다보니 5시경이 되었다. 배가 넘넘 고팠다. 그리하여 "나 너무 배고 고파!!!" 했더니
친구 해순이가 가게에 모인 다른 친구 3명까지 해서 맛있는 저녁식사 대접을 해줬다.
그리고 식사 후 그 바쁜 와중에도 장남재를 구경 시켜준다며 어둑해진 도로를 달려 보여주고
<밝은 대낮이였으면 풍경이 넘 아름다웠을 것 같다. 왼쪽 불빛 있는 곳이 산서면이라 하는데....>
<장남재에 있는 누각 위로 달이 보였다. 아래와 이곳의 온도차는 넘 심했다. 아이 추워라~!!!>
내려와 직접 운전하여 명순이와 함께 오수까지 배웅을 해주어
명순이가 사준 전주표을 끝으로 고향 여행을 끝을 맺었다.
이렇게 산서의 만남은 짧고도 긴 일정이 되어 추억의 한페이지가 되었다.
오수터미널에서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싣고
전주 오빠집에 도착하니 밤 9시 30분!
여행 일주일전에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난 후유증인지
엄청 피곤하고 몸이 힘들었다.
그래도 어찌 일찍 잘 수 있으랴.
올케언니가 대접 해준 과일 야식에 큰오빠와의 와인 한 잔 두 잔은
남매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게했다.
드디어 시계는 밤 12시을 넘겼고 긴긴 대화는
그간의 서운함과 힘든 기억,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편안함으로
그간의 쌓인 맘을 스스르 녹여나가게 한(적어도 나에겐...)
참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였던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잠이 깨어 기도하는데 문득 오빠의 맘이 살펴졌다.
"그동안 형제들 때문에 장남인 오빠가 참, 외로워셨겠구나~!" 하는 마음이 잡혔다.
그러고나니 큰오빠와 올케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이 일어나면서
나의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했다.
큰오빠집에서 이른 아침 7시 10분에 식사를 하고
오빠, 언니의 약속된 일정 때문에 아침 8시30분에 다 함께 나와
난 막네오빠댁으로 이른 방문을 했다.(도착하니 아침 식사중~.)
그곳에서 막내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나니 11시가 넘어버렸다.
아차 싶었다. 9시 넘어 대전 성숙이와 통화를 하려 했었는데.....^^*
<조카는 네잎크로바를 잘도 찾는다. 이 사진 속의 네잎크로버는 두번째 찾아낸 것.
난 끝내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일찍 출발하려고 했던 대전행은
언니가 '한국관'에서 사준 맛있는 점심을 먹고
2시 고속으로 사회 친구 성숙이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0분!
그러잖아도 늦었는데 그 친구는 시내도로가 막혀
나보다 더 늦은 4시 넘어서야 나타났다.
이럴줄 알았다면 또 한 친구와의 약속을 안하는건데.... 어쩐담.
친구가 늦게 나타나는 동안 의정부행 차표를 알아보려가니
생각보다 소요시간이 길었다.
2시간 30분 소요 예정이라한다. 주말은 더 걸릴 수도....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 결국은 막차표를 끊지 못하고
앞차인 오후 6시 30분차를 사가지고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 터미널 근처 '롯데리아'로 들어가 짧은 시간에 긴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친구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전화속으로 전해져 왔던 친구의 한숨소리를.....
지금 친구가 남편의 정신분열 비슷한 증세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남편이 직장에서의 과중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분열 현상 때문에
지금 집안이 쑥대밭 그 자체임을......(피해의식에 통제 불가한 난폭한 행동까지...)
내가 그 어떠한 위로와 말로도 도울 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그저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선물하기위해 가져간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책만 건내주고
아쉽고 안타까운 작별을 하고 돌아와야 했다.
이 친구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만 준다면 스스로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터인데...
지금 상황에선 책을 읽기란 싶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시절인연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연이 친구에도 빨리 찾아 왔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이렇게 하여
아버지산소, 고향 산서, 전주 오빠, 대전 친구를 끝으로
대전 시외터미널에서 오후 6시 30분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9시가 넘었다.
마중 나온 남편이 차안에서 묻는다. 여행 재미있었느냐고....
집에 도착해서는 가벼운 말 한 마디를 남긴다.
"너무 과욕을 부렸어! 어린 애들을 집에두고 혼자서~^0^"
이 한 마디는 내내 여운으로 남았다.
결혼 후 11년만에
아줌마로서의 첫 1박2일 단독여행!
나에게는 소중한 만행 길을 떠났다 돌아온 느낌이였다.
이 1박 2일 동안 난 12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5명은 눈인사 정도로만 마주치고 돌아왔다.(숙모2분, 조카3명....)
나에게 짧은 일정이라
전주에 가서도, 대전에 가서도 몇 사람은 아에 전화도 못해보고 돌아왔다.
생각은 참 많이 났었는데 어쩌랴~^^*(모르는게 약!!!)
***************************** 마음 한 자락!!! ****************************************
"있는 그대로 보아라!"
뱀은 그냥 그 자리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을 뿐인데
난 뱀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마음에서 무서움증을 일으켜 스스로 가슴을 조이게 했다.
"상대를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상대의 성품으로 돌아가
그 당시의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니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큰오빠, 큰언니, 엄마와의 갈등으로 인한 한 때의 형제들간의 불협화음!
힘들었던 세월 세월이 감사함으로 전이되면서 큰오빠, 큰언니에 대한
서운함의 찌거기까지 흘려 내려갔다.
"상대가 묻기 전에는 단지 들어주기만 하라. 남의 인생에 참견 안하기!"
대전 친구의 아픔을 내가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내려 놓으려 애썼다.
또 한 말씀도 생각난다.
"먼저 자기부터 수행하세요!
내가 먼저 편안하고 안정이 되어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수행이 된 후에도 안내자 역할 일 뿐 '수행의 길"의 선택은 상대가 하는 거라고.....
난 단지 안내 할 뿐, 너무 조급하고 안타깝게 생각지 말라고...
이 조급한 마음은 상대에게 아무련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내가 걱정한들 그 친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다음엔 이런 친구같은 아픈 사람들을 만나거든
위로와 정신적으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수행의 힘을 더 키워야겠다고 맘을 다져본다.
더 열심히 정진하여, 나도 좋고 내 이웃도 좋은 삶을 살아보면 참 좋겠다고....
다시 한 번 원을 새워본다.(죽기전에 가능할까만은....^^*)
참 값지고 좋은 여행이였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법륜스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2007.4.27(금)~28(토) 여행을 마치고...
2007.5.7 글을 마무리 하다.